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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24. 2020

흰 머리를 대하는 마음

흰 머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깨우쳐 준다.

어렸을 적 흰 머리는 내겐 돈이었다.

흰머리를 찾아 뽑으면 하나에 100원 씩 주시겠노라고 어머니가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내 다리 위에 어머니의 머리를 대고, 나는 정말 열심히도 흰 머리를 찾았다. 때론, 검은 머리를 함께 뽑는 어설픔도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두둑한 용돈을 벌만큼 나는 능숙해졌다.


그 장면을 어른이 되어 돌이켜 볼 때, 두둑한 용돈과 능숙한 나의 실력은 흰 머리의 갯수와 치환 된다.

그리고, 흰머리의 갯수는 다시 어머니의 고생과 치환 된다. 그것에 대한 나의 무지와 그저 용돈이 생겨 좋다는 그 때의 철 없음도 함께.


요즘 들어 부쩍 흰 머리가 많이 늘었다는 소리를 듣는다.

내 흰 머리는 분명코 고생의 결과가 맞다. 흰 머리가 문득 많이 늘었던 그 때가, 직장에서 마음 고생을 한 그 때와 일치 하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는 멜라닌 색소의 결핍이지만, 그 결핍의 원인은 결국 마음고생과 스트레스로부터 온다는게 의학계는 물론 내 정서계의 정설이다.


그렇다면 마음 고생의 원인을 해결하고 나면 다시 검은 머리가 돌아 올까?

안타깝게도 한번 난 흰머리가 검은 머리로 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한다. 아, 말 그대로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흰 머리를 대하는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다.


흰 머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자는 것. 

즉, 지금의 내 정체성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 흰 머리가 날거라고 생각 못했던 지난 날의 나를 어르고 달래는 것이다.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었고,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함을 인정하면서. 사실, 지금 나이에 흰 머리가 하나도 없다는게 순리적이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더불어, 흰 머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깨우쳐 준다.

이제라도 어머니를 더 챙기고, 내 마음을 좀 더 들여다 봐야겠다. 흰 머리가 검은색으로 바뀌길 바라는 것보다 더 빠르고 현명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즉, 돌아 오지 않을 것들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사는 것보단 지금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려 한다.


그것이 정신 건강에 더 좋다는 결론이다.

(그러면, 검은 머리가 돌아 오거나, 흰 머리가 생기는 속도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억지스럽고 미련한 희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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