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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31. 2020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나는 그것을 매일 증명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무언가 불공평하단 생각은 커진다.

그것은 대개 시간과 관련이 있다. 일면식도 없는 시간은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저가 그 숫자를 센다.


젊을 때 그 셈은 '카운트-업'이다.

무언가 희망이 있을 것처럼, 숫자는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상승이다. 그래서일까. 좀 더 어릴 땐, 내가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아니 심지어는 시간이 많다고 착각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언제 어른이 되냐고, 허공에 철없는 삿대질을 했던 기억도 난다.


깨달음의 시점은 시간의 셈이 '카운트-다운'으로 돌아섰다는 걸 알아챘을 때다.

말 그대로 하강이다. 알아챘다고는 하지만, 그 시기는 이미 늦은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거란 걸, 비루해진 몸과 먹고사는데 최적화된 마음이 나를 일깨운다.


그렇게, 시간의 셈이 어릴 때와 반대로 가면서부터는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

페르소나는 많아지고 두꺼워지고 무거워진다. 겹겹이 쓴 가면 속에서 피부 트러블이 생기듯, 인생에도 여러 트러블이 생긴다. 쓰고 싶은 가면보다, 써야 하는 가면을 쓰면서 나의 진짜 표정은 온데 간데없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나에게 주어진 가면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글을 쓰게 된 후, 그리하여 나 자신을 좀 더 진지하게 만나는 법을 알고 난 후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가 써야 했던 페르소나'를 부정하며 보냈는가. 결국, 내가 '써야 했던 가면'도 내 것이란 걸 아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을 돌아온 것이다.


정체성은 고르거나,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매일 증명한다.

방법은 쉽다.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의 목록을 작성한다. 많다. 정말 많다. 미간이 찡그려지는 일도 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위 제목을 바꾼다. '해야 하는 일들'에서 '하고 싶은 일들'로. 그러면 그것은 신기하게도 하고 싶은 일로 변한다. 직장인으로서,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자기 계발을 원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일들'은 결국, 내 가면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그리고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일이다.

무의식 중에 '언젠간 해야지...' 하며 얹혀 있던 것들이다. 결국, 그것들은 나를 위한 일이란 걸 깨닫게 된다.


오늘의 글쓰기도 '해야 하는 일'의 목록에 있었고, 그 제목을 '하고 싶은 일'로 바꾸고는 이렇게 글을 써내려 가고 있다.


그러니, '나는 정말 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다'라고 할 수 있다.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 않을 것들을 맞이하는 담담한 마음이 좀 더 커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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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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