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Jul 05. 2020

비겁할 줄 알아야 진짜 직장생활이다

스스로를 낮출 줄 알고, 상대방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가짐

비겁(卑怯)

떳떳하지 못하고 겁이 많음

- 어학사전 -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하려고만 하는 이 시대에.

어느 한 드라마에서 진짜 사랑은 찌질한거란 대사가 나왔다. 그 대사를 듣고 나는 격한 공감을 했다. 지난날의 내 사랑을 돌아보면 핑크빛의 시간들이 가득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둡고 칙칙한 색이 있었다. 오히려, 그 찌질한 시간이 있었기에 사랑은 더 애틋했고 좀 더 진한 분홍색이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게 바로 우리가 사는 현실이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왕자와 공주만을 떠올리는 유아적 사랑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직장생활에도 기쁨과 슬픔이 있다.

그 둘의 비율에 따라 직장생활의 만족도는 결정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회사에서 나는 멋지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고속승진을 하는 승승장구의 아이콘이 되길 바랐다.

미디어에 나오는 최연소 실장이 나의 롤모델이었다. 일과 사랑을 모두 거머쥐는 그런 캐릭터 말이다. 그러나 직장생활이라는 현실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배움에 대한 기쁨이 아니라 유토피아는 없고 디스토피아만이 덩그러니 남았다는 절망이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역할을 하고, 내가 원하지 않았던 행동과 말을 하며, 내가 기대하지 못했던 갈등과 사건들이 촘촘하게 몰려오는 시간 속에서 나는 풍화되고 있던 것이다.


비겁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은
도움이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멋있어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다.

직장에서 잘 나가고 싶은 이유는 그게 가장 크다. 직장인은 월급과 승진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결국, 인정받고 싶은 게 사람의 본능이며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는 그것에 더 많이 요동하다. 결국, 인정받아야 월급과 승진도 보장된 것 아닌가. 이렇게 보면 '인정'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이 이 세상을 굴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겁하지 않은 척 발버둥 친다.

인정받기 위해 보여선 안 되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비겁함이기 때문이다. '비겁'은 낮을 '비'와 겁낼 '겁'자로 이루어져 있다. 뭔가를 앞두고 슬쩍 발을 뺀다던가 도망가는 캐릭터를 주위에서 많이 봤을 것이다. 월급 루팡의 캐릭터를 스스로 부여하거나, 후배의 공을 가로채거나 반대로 잘못된 걸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는 사람들. 그럼에도 그들은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왜 그렇게 비겁하게 사냐고 하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칠 것이다. 


"나는 비겁한 사람이 아닙니다!"


비겁하지 않은 척하면 할수록 그 비겁함은 커진다.




형사와 조폭이 나오는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에서, 나는 조폭 역할을 맡은 연기자를 유심히 관찰한다.

대개는 형사 앞에서 얻어맞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지만,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형사를 욕하고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며 자신들의 부하들 앞에서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그 조폭의 입장이 되어 보자면, 형사 앞에서 비겁함으로 그 순간을 모면한 것이다.

그 순간 조폭의 자존심이나 자존감은 어떠했을까. 마음에서 천불이 나고 창피하고 부끄럽고 비겁함의 무게를 몇 톤이나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부하들을 다그치는 모습에서 나는 그야말로 '내공'을 느낀다. 


내 뜻을 펼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이 되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


직장에선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살면서 안된 것들보다 더 많다. 각자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밀도 높은 조직이니 어쩔 수 없다. 당장의 월급이 아쉬운 게 아니라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도 안 되는 것들을 되게끔 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그리고 '비겁함'은 안 되는 것들을 되게끔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 죽도록 싫은 사람이라도 일이 되게끔 하기 위해선 웃으며 부탁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내가 나서서 했다가는 쪽박 찰 게 뻔한 일이라면 웬만해선 도망치는 게 낫다. 당장 상사 앞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뱉어내지 못하더라도, 상사가 할 말 다 하게 한 다음 나중에 넌지시 다시 말할 수 있는 기다림의 비겁함도 필요하다.


그러니까, 비겁할 줄 알아야 하고 비겁함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누군가에게 무책임하게 일을 던지고 도망치거나 심각한 피해를 끼치는 비겁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결국, 내 뜻과 일을 이루기 위해 나를 잠시 접는 걸 이야기하는 것이다.


비겁함을 나쁘게만 해석하는 게 아니라, '낮출 땐 낮추고', '겁낼 땐 겁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보다 높아지려 할 때 우린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오히려 잃는 게 더 많다. 그리고 월급 받는 존재로서 나는 모든 사람이 낱낱이 바라보고 있음을 잊지 말고 겁을 내어 스스로를 미리 보호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승진을 하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권력을 거머쥘 것 같지만, 위와 옆 아래에서 노려보는 시선들은 그야말로 위협임을 언젠간 알게 될 것이다.




비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진짜 직장생활이다. 찌질함이 핑크빛 사랑을 만들어내듯, 비겁함이 그나마 원활한 직장생활을 이어가게 할 것이다. 형사 앞에서 비겁함과 비굴함을 기꺼이 내어보인 조폭은 결국 자신을 위해 그런 선택을 했다. 그러니까 비겁함은 나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비겁함.

나를 지키고,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비겁함.


결국, 많은 시간이 흐르고 수 없는 갈등을 겪어봐야 알 수 있다.

스스로를 낮추고, 회사나 상대방을 (약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만만하게 보지 말고)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다 보면 진정 나를 위한 '비겁함'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낮추지 못하고, 상대방을 두려워하지 않아 많은 맘고생을 한 나의 찌질하지만 진실된 조언이다.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