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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29. 2020

무엇을 먹었나 돌아봐야 할 나이

난 '음식'을 '욕심'과 치환하여 내 안을 들여다본다.

젊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기에 '잘 먹는다'는 건.

'양'에 가까운 의미다. 무엇을 먹어도, 아무리 먹어도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 많이 먹고 배부르고 나서야 '잘 먹었다'는 신호를 뇌에 보내고, 우리는 그것을 기쁨의 탄식과 함께 숨처럼 입으로 뱉어 낸다.


그러나 젊음이라는 말이 더 통하지 아니할 때.

'잘 먹는다'는 건 양을 줄이고 맛보다는 건강을 위해 먹는다는 의미다. 양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거나, 먹고 싶은 걸 함부로 계속 먹다가는 결국 탈이 나게 된다. 먹는다는 건,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 되는데 이때 느끼는 서글픔이 상당하다. 먹는 즐거움은 물론, '젊음'이라는 타이틀을 빼앗기는 순간. 허망함 그 자체다.


제대로 먹지 않으면 빌빌대고, 뭔가를 제대로 먹으면 속이 더부룩한 나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나이를 실감한다.


더불어, 나이가 들면 먹는 그대로 반응이 온다.

아무리 마셔도 몸에 영향을 주지 않던 커피 한 잔이, 지친 몸을 잠재우지 않고 머리만 아프게 한다. 간만에 밀가루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설탕 크림이 잔뜩 올라간 음료를 먹고 나면 심장이 요동한다. 


이제는 무엇을 먹었나 돌아봐야 하는 때라는 게, 못내 섭섭하다.

그러기 전에, 먹고 싶은 것보다는 먹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게, 못내 서럽다.


하루를 기점으로 아침은 왕처럼, 점심은 평민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먹으란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하루'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릴 땐 왕처럼, 젊을 땐 평민처럼, 나이가 들어선 거지처럼 먹으란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흔쾌히 동의한다.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할 때, 하루 음식의 비중을 이와 같이 했을 때 효과를 봤고 나이가 든 지금은 조금 먹어야 속이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난 '음식'을 '욕심'과 치환하여 내 안을 들여다본다.

내 위장이 이미 많은 음식과 먹고 싶은 음식만을 담을 수 없듯이, 내 마음 또한 큰 욕심과 내 맘대로 하고 싶은 욕망을 다 담을 수 없다. 


먹으면 몸에 바로 나타나는 증상처럼, 과한 욕심은 내 마음과 생활에 바로 신호를 보낸다.

그러니, 이제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마음먹고 있는지, 바라고 있는지도 돌아봐야 할 나이인 것이다. 젊었을 때 욕심은 에너지가 되지만, 나이 들어서의 욕심은 거추장스럽고 초라하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 내지 않고, 손에 들어온 행운은 잠시 머물다 갈 손님이라고 받아들이는 여유.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입으로 맛을 느끼는 게 행복이었던 때와, 살기 위한 만큼 배를 채우고 몸에 맞는 음식을 선택해야 하는 때를 구분할 줄 안다면.


나는 그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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