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와 같이 걸어주겠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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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광장 (Dam Square)까지는 걸어서 가기로 했다.
5번 트램을 타면 곧 도착하지만, 오랜만에 시내 사이사이를 걷고 싶었다.
걸어가자는 말에 그 아이는 입이 삐쭉이다.
그럴 거면 따라오지 말라니 아니란다.
그래도 입은 삐쭉한 게 나름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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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dseplein에서 담 광장까지는 1.6km 정도, 약 25분 정도 거리다.
전차와 사람들, 그리고 자전거로 얽힌 길을 이내 익숙한 듯 같이 걷는다.
젊음의 거리라 그런지 비보잉을 하는 작은 공연단이 주위를 끌어모은다.
역시나 유로 동전을 걷기 위한 모자는 앞에 놓여 있다.
불독 모양 간판이 달린 커피숍은 대마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대마와 술을 같이 팔 수 없기 때문에, 커피나 음료만을 팔아 여기 네덜란드에서는 대마를 피우는 곳을 보통 커피숍이라고 한다. 정말 커피를 마시는 곳은 카페로 이야기한다.
광장을 가로질러 전차와 함께 걷는 길로 접어든다.
관광객들도 그 복잡한 거리를 질서 있게 걸어 다닌다.
무질서 속에 보이는 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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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완벽했다.
네덜란드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유명하지만 7월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네덜란드의 강수일수는 일 년에 약 300일 정도다.
그렇다면 일 년 중 약 두 달이 비가 오지 않고 날씨가 좋다는 이야기인데, 바로 그때가 7월과 8월 즈음이다.
여름엔 없던 우울증이 치료될 정도의 하늘 높은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고, 겨울엔 없던 우울증이 생길 정도로 우중충하고 매섭다.
날씨가 좋으니 사람들이 최대한 상반신 노출을 하고 거리 곳곳에 자유롭게 앉아 있거나 누워있다.
전형적인 유럽의 모습이다. 때론 과감히 상반신 노출을 한 여성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겨울에 보지 못할 햇살을 받아 놓으려고 다들 정신이 없다.
밥을 많이 먹어둔다고 나중에 배가 안 고플 것도 아니고, 햇살을 많이 받아 놓는들 겨울에 다시 꺼내어 볼 순 없을 거지만 할 수 있을 때 즐기고 나중을 받아들이는 것. 결핍에 대한 두려움을 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디나 같은 것 같다.
문득, 밑도 끝도 없이 '사랑'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할 수 있을 때 맘껏 하고 나중에 헤어지고 나서도 꺼내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그렇지 못하더라도 할 수 있을 때 미친 듯해야 한다는 걸 그 순간 깨닫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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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걷다 보니 곳곳에 운하가 보인다.
암스테르담 시내의 운하는 사진 찍기가 좋다.
그저 갖다 대면 엽서 한 장이 완성되는 구도다.
네덜란드는 에펠탑과 같이 거대한 상징물은 없지만 소박한 무언가의 매력이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기보다, 눈과 마음으로 소박하게 담아야 하는 매력.
꼭 사진을 찍지 않아도 눈으로, 마음으로, 추억으로 간직할 가치가 있다.
운하 위에 배를 띄워 맥주 한잔에 담소를 나누며 유유히 흘러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겨웠다.
암스테르담 운하에서 배를 타고 칵테일 한 잔 하는 것도 일정에 넣어달라고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자기도 해보고 싶었던 거라며 흔쾌히 찬성한다.
몇 년 살면서 그런 것도 안 해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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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사람들은 일상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군더더기가 없다.
덕분에 사업을 하기에 힘들다. 삶에 군더더기가 없으니 큰 차, 큰 냉장고, 럭셔리한 옷 등이 필요 없다. 아이러니하게 그들의 평균 신장은 세계 Top 순위다.
2m 크기의 사람들이 소형 해치백을 타고 다니고, 점심은 간소하게 샌드위치 하나로, 그래서 큰 냉장고가 필요 없고, 태풍이 불어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럭셔리한 옷이나 명품 가방은 그리 필요한 물건이 아니다.
오죽하면 다른 유럽에서 네덜란드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 승객들의 옷이 거의 무채색에 가깝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역시 네덜란드 사람들이구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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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니 꽃시장이다.
출장 때는 바빠서 들르지 못하고, 책으로만 보던 곳인데 마침 가는 길에 지나게 되었다.
잠깐.
그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꽃시장의 초입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하는데, 얘는 어디 간 거야.
아, 따라오다 지쳤는지 저 멀리 뒤에서 나를 노려보는 중이다.
내가 너무 빨리 걸었나?
그러고 보니 이 아이 신발이 굽이 높은 힐이다.
졸지에 매너 없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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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한 번 둘러볼래? 힐 신은 사람 너 밖에 없다. 유럽에서 웬 힐이냐?"
조금은 미안했지만, 그래도 내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니, 대체 왜... 힐?
"누가 아저씨 아니랄까 봐. 치. 아, 몰라. 난 죽어도 힐 신어야 하는 여자야. 키가 작아서 그런다 왜. 그리고 나 잘 걸어 다니지도 않아. 웬만하면 전차나 택시 타지."
너, 유럽에 왜 있냐. 대체.
"알았다. 그래도 좀만 참아. 거의 다 왔어. 근데, 계속 다닐 순 있어? 담 광장 가서도 그 주변 많이 걸어야 하는데... 너 오늘은 그냥 들어갈래? 나 혼자 돌아봐도 돼."
"아닙니다요. 아저씨 의리 없네. 아저씨 여행하는 동안 같이 다니기로 했잖아. 나 힐 잘 신고 다녀. 5분만 쉬면 돼. 이제 됐어. 가자."
잠깐 보기에도 발등이 퉁퉁 부어 있었다.
평평한 바닥도 아니고, 그 오래된 돌길을 조심스레 걸어오느라 아마 발에 힘을 많이 준 모양이다.
당돌한 아이가, 왜 이럴 때는 못 걷겠다고 당돌하게 이야기를 안 하는 건지.
"너 잠깐 쉬고 있어라."
정확히 15분 뒤.
손에 좀 더 편한 플랫 슈즈를 들고 아이 앞에 섰다.
Leidseplein 광장 버거킹 옆에 있던 H&M 매장이 생각이 났고, 거기서 편해 보이는 신발을 사 왔다.
그 아이는 힐을 절대 안 벗겠다고 툴툴거리다 끝내 신발을 갈아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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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지 하루 만에 연인들이나 하는 힐 대신 편한 신발 사다주기를 하는 내가 뭐 하는 건지 웃기긴 했지만, 나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가 나와 같이 걸어주겠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고마웠다.
평소에 걷는 거 싫어한다는, 그리고 발등이 퉁퉁부어 어리광 피우는 아이에게는 그렇게 해줘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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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발 사이즈는 예전에 만났던 여대생의 그것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 사이즈는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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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좀 편해? 맘에 안 들어도 일단 편해야 하니까 오늘만이라도 신어."
"색상이 이게 뭐야. 여자면 무조건 분홍색 신어야 하냐, 아저씨! 그래도 내 스커트 하고 예쁜 다리에 어울리니까 참을게. 고마워."
왜 이토록 나와 함께 걸어주려고 하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또다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특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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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같이 걸을까?"
Place Information
1. H&M in Leidseplein: 그 아이를 위해 Flat Shoes를 산 곳
- Leidseplein 1-3,1017 PR Amsterdam, Netherlands
2. Leidseplein 주변 운하: 꽃 시장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작은 운하 Bridge
- 508 Keizersgracht, Amsterdam, North Holland
3. Konigsplein: 그 아이를 돌아보게 된 꽃 시장 입구
- Koningsplein, Amsterd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