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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31. 2016

[너를 만난 그곳] #18. 같이 걸을까 Part.2

다시는 결코, 연이 아닌 꽃은 꺾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 12-


힐에서 내려온 모양새가 어째 정말 '아이'란 말에 잘 어울렸다.

윗 세계에서 아래 세계로 온 기분이 어떠냐는 농담 섞인 말에, 천상에서 내려온 천사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어떠냐고 되묻는다.


말이나  못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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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시장인지 사람 시장인지 모를 만큼 무언가로 북적였다.

다양한 튤립의 구근들. 그리고 이름 모를 화려하고 또 수수한 꽃들까지, 마치 여행 책자에 선명하게 찍힌 사진 속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구근들의 가격은 몇 유로 되지 않았지만, 16세기 해상 무역을 장악한 이 곳 네덜란드 사람들이 배를 띄우기 위해 주식을 처음 만들었을 때, 색이 귀한 튤립의 구근은 집 한 채 값을 호가하며 주식을 대신 했다고 한다.


더 파고들어보면, 사실 튤립은 네덜란드 꽃이 아니란다. 힘들게 간척한 땅에 돈이 될만한 것을 심게 되었고 그것이 튤립이 되어 나라의 꽃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터키의 나라 꽃도 튤립으로, 튤립은 터키에서 넘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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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네덜란드 사람들은 참 똑똑한 장사꾼이란 생각이 든다. 태생이 작은 영토와 낮은 곳을 간척해 살아남아서 그런지 외부에서  받아들인 것도 철저히 자기 문화와 자산으로 만든다.


튤립과 더불어 풍차도 중동 어딘가에서 넘어온 것을 물을 빼는데 쓰면서 자고유의 것으로 만들었다. 풍차 하면 네덜란드가, 네덜란드 하면 풍차가 떠오르는 사람에게 원래는 풍차와 튤립이 네덜란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알고 보면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것이 인생인가 보다.

지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그리고 사람들. 다시 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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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니 문득 생각나는 사람, 아니 때가 있다.

그때를 돌아보면 사람보다는 '때'가 더 먼저 기억나는 것이, 무언가를 결정했어야 하는 '때'였기 때문이다.


살아가다 보면 많지는 않지만 사랑해선 안되거나, 사랑해봤자 끝이 빤히 보이는 인연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한  인연일수록 달콤함은 더하고 아름다움은 치명적이다.


그래서  그때 생각했다.

이 꽃을 꺾을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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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그저 지나가면 머리 속에서 그 꽃의 존재는 떠나지 않는다.

더불어, 꺾지 않음을 후회하고 누군가에게 꺾일 생각까지 하면 영혼을 좀먹는 사태가 발생한다.


반대로, 꽃을 꺾으면.

당장은 내 것이 된다. 하지만, 몇 리터에 달하는 물에 담가 놓고 지극 정성을 들인 들.


곧 언젠가 그 꽃은 시들어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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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때, 거기에 있던 그 인연에게 정말 직접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나, 너 꺾어도 될까?"


있어 보이려, 오글거리라고 물어본 말이 아니었다.

그때 고민의 크기는 살아오면서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민 중 하나였기 때문에 진지했고 받아들이는 그 인연도 내 질문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러고는 그 인연도 신중히, 자신을 꺾으라 했다.


- 18 -


내가 꺾었던 그 꽃은 당연히 시들었다.

생각보다  오래갔던 것이, 시들고 난 다음 가슴에 박힌 그 꽃의 가시 깊이가 그 기간을 말해주었다.


돌이켜보면, 시간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가시의 깊이가 아닌.

가시의 크기.

사랑의 크기.

존재의 크기.


그래서 난  후회했더랬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았더랬다.

결국, 둘 다 했더랬다.


- 19 -


다시는 결코, 연이 아닌 꽃은 꺾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 20 -


걷다 보니 문트탑(Munttoren) 앞이다. 영어로는 Coin Tower 정도의 뜻으로 예전에 돈을 찍어내던 곳이라 한다. 꼭대기에는 암스테르담의 여러 교회 종탑을 모아 놓은 '카리용'(Carillon: 많은 종들을 음계 순서대로 놓고 치는 악기로 전통적으로 종탑에 설치)이 마침 그 연주를 시작한다.


멍하니 서서 위를 바라보고 눈을 감아본다.

북적이는 곳에서 들리는 연주가 마치 어느 곳에서 들은 배경 음악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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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눈을 돌려 옆을 보니 그 아이가 나를 따라 하고 있다.

저것은 문트탑이고 연주되는 것은 카리용이란 설명을 해주려다, 그저 내버려두고 다시 고개를 돌려 위를 바라봤다.


지금 이 순간은  머리보다는 눈과 마음, 그리고 그 자체를 느끼는 것이 그 아이에게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몇 년 동안 살았어도 그저 스쳐 지나갔던 풍경과 소리에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얌전히 서 있었다.




Place Information


1. Munttoren: 꽃 시장 끝자락의 '문트탑', 함께 바라보고 들었던 카리용

 - Muntplein 12/14,1012 WR Amsterdam, Netherlands


2. 꽃 시장: 책에서나 보던 암스테르담 시내 분주한 꽃시장, 그 '때'를 생각나게 한 그곳

 - Singel 630,1017 AZ Amsterdam, Nether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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