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습작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Feb 15. 2016

[너를 만난 그곳] #19. 같이 걸을까 Part.3

너의 외로움이 무거웠구나. 그리고 무서웠구나.

- 22 -


한 동안 서로  말없이 걸었다.


자전거와 전차, 자동차와 그리고 분주한 사람들. 그리고 운하 위의 배들까지.

문트탑 앞에서 담광장까지 이어지는 약 800미터의 길은 그렇게 숨을 쉬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운하가 길을 안내하고, 차량들과 사람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이의 표정을 보니 뭔가 깨달음이 있던 걸까.

카리용을 보고 듣고 난 후 조용해졌다.


- 23 -


"왜 그래, 괜찮아? 다리가 아픈가? 아님 문트탑 보고 뭔가 느낀 거야?"


"아저씨, 나 배고파."


"어, 그래."


- 24 -


자그마한 체구지만 자신은 먹는데 일가견이 있다고 한다.

아니, 그보다 세상에서 배고픔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배고픔은 곧,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스마트폰과 같다며 열변을 토했다.

그러면서 더  배고파했다.


- 25 -


담광장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예전에 검색하다 알아본 가고 싶은 Pub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맥주 호스가 테이블과 연결되어 마음껏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 유기농 닭구이가 맛있다고 알려진 곳이다.


그 아이에게 혹시 유명한 이 곳이 어디인지 아냐고 물었다.

예상대로 모른단다. 들어본 적도 없다고.


그럴 줄 알았다.

네가 나를 안내하는 거냐, 내가 너를 안내하는 거냐.


사실, 이미 이럴 줄 알고 휴대폰 지도를 열고 있었다.


- 26 -


초저녁 이어선지 사람이 그리 많진 않았다.

주말 밤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고 알려진 곳이다.


안내받은 테이블과 바닥에 땅콩 껍질이 수북하다.

테이블에 딱딱한 껍질 그대로의 땅콩이 놓여 있는데, 먹기 위해 깐 껍질은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버리면 되는 것이다.


주입식 교육을 받은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처음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좀 지나지 않아 마음껏 까먹고 마음껏 버리는 조그마한 '자유'를 만끽했다.


물론, 그 아이가 땅콩으로 배 채울 거냐며 뭐라고 한 마디 한 것 같긴 하다.


- 27 -


정말로 땅콩으로 배가 조금 채워질  그즈음 우리가 시킨 맥주와 유기농 닭구이, 그리고 샐러드가 나왔다.

1인 1 닭이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로 맛있게 구워져 나온 닭구이는 오감을 만족케 했다.


작은 체구에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뭐랄까. 허겁지겁은 아니지만 보통 음식도 맛있게 먹는 그런 모습과 소리랄까?

먹는 속도는 나보다 빨랐지만 허둥대거나 보기 싫은 류의 그것은 아니었다.


- 28 -


"많이 배고팠나 보네? 많이 먹어. 내가 살게."


"아저씨가 살 거라는 거 알아. 여기 되게 맛있다. 난 외동이라 음식 욕심이 많아!"


"응? 보통 형제나 남매가 식탐이 더 많지 않나? 특히 동생의 경우에는 더."


외동이어서인지, 어려서부터 외로움을 많이 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먹는 것에서  위로받았고, 한 때는 폭식증에 고도 비만까지 갔었다고.


부모님은 두 분 다 대학 교수님으로 자기 자식보다는 연구 주제에 관심이 더 많았다고 한다.

두 분의 연구 분야가 같았고 박테리아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래서 이 아이는 어렸을 적부터 자신이 박테리아보다 못한 존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난, 세상에서 박테리아가 제일 싫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게 나를 이겨먹잖아. 만나서 싸울 수도 없고. 엄마 아빠를 고만 좀 데려가라고 할 수도 없고."


갑자기  그때가  생각났는지, 그 아이는 이미 가득한 입 안에 샐러드와 치킨 한 조각을 큰 포크로 집어  욱여넣었다.


"급랪섭...움움움"


"아, 괜찮아. 천천히 말해. 꼭꼭 씹어."


- 29 -


물어본 적은 없지만, 그 아이는 사무친 듯 여러 가지 것들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먹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두 분 다 교수이고, 이렇게 보내주는 돈으로 해외에서 맘껏 살고 있는 나에겐 금수저로 보이는 이 아이. 이야기를 들을수록 아이의 체구가 좀 더 작아 보였다.


나는 먹는 것을 멈추고 계속해서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만 상처 가득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어린 시절이 이 아이의 어린 시절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손을 뻗고 있었다.


너의 외로움이 무거웠구나.

그리고 무서웠구나.




Place Information


1. 담광장 가는 길: 문트탑에서 담광장으로 가는 800m 거리의 길. 자동차, 사람, 자전거 그리고 운하 위의 배들까지 각자로 가는 길의 모습이 다채로운 곳.

  - Rokin 128 AHS, Netherlands


2. Bierfabriek (Beer Factory): 땅콩 껍질과 자유가 가득한 곳. 맥주와 유기농 닭의 조화. 그리고 그 아이의 외로움.

  - Rokin 75,1012 KL Amsterdam, Netherlands

매거진의 이전글 [너를 만난 그곳] #18. 같이 걸을까 Part.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