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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08. 2020

상사도 월급쟁이일 뿐이다.

월급이란 힘은 과연 크고도 무섭다.

상사도 월급쟁이일 뿐이다!


약 20년 전, 어느 서점에서 집어 든 자기 계발서에서 처음 맞이 했던 말.

그때의 나는 직장생활 초기에 그 어떤 조언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배운 적 없는 무수한 일들을 맞이하고, 심지어는 배웠던 것들이 쓸모없거나 무참히 깨지는 상황들을 보며 나는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 글 속에는 '상사는 절대 당신을 책임져주지 않으니 이를 염두하라는 말'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책의 제목과 표지 디자인, 다른 내용들은 생각나지 않지만 오직 이 부분이 잊히지 않는 건 그만큼 나에게 강력한 깨달음이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깨달음이라기보단 이해되지 않는 놀라움이었다.

무엇보다 상사를 나와 같은 월급쟁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고, 나에게 시킨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말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동안 그 이해되지 않음과 왜 그럴까에 대한 물음이 마치 만화 속 주인공의 말풍선처럼 내 머리 위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이 광경은 데자뷔와 같이 나에게 선명한데, 이 생각을 하며 회전문을 돌던 예전 그때가 생생하다. 그래서인지, 회전문을 만날 때마다 이 생각이 떠오르고 만다.


그나저나, 그게 무슨 말일까? 에이,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기나 할까?


신입사원은 아직 사회인의 때가 덜 묻은 존재다.

그러니까, 아직 학생이라는 흰 여백이 남아 있는 존재. 


더더군다나 우리나라와 같이 도제식으로 상하관계 뚜렷하게 일을 배워 가는 구조에서, 상사가 나와 비슷한 존재라거나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말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나는 때가 덜 묻었던 게 맞다.

그리고 이 말은 이후의 직장생활에 진심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직장 생활 조금만 해봐도
바로 알 수 있는 것들


단언컨대,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그 자기 계발서는 진리였던 것이다.

학생이라는 여백에 사회인이라는 흔적이 남겨지기 무섭게, 나는 정말 수많은 군상과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


그러니까, 상사도 결국 월급쟁이다.

직급과 직책을 떠나서 그렇다. 오히려, 연차가 더해갈수록 월급쟁이라는 신분의 색채는 강해져서 그것이 끊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차고 넘친다. 월급이 끊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영혼을 잠식하고도 남는다. 그러하기에, 결국 월급이라는 메커니즘에 의해 사람들은 움직이고 반응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마당에 후배를 위해 무엇이든 책임져 줄 상사는 절대 없다.

줄 수 있다면, 월급이 끊기지 않는 범위에서 또는 월급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무언가가 이루어진다. 그 이상을 바라서도 안되고, 바랄 수도 없다. 기대가 컸다간, 실망이 더 커진다. 그러나 나 또한 월급쟁이이므로,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면 된다. 섭섭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없다. 


직장 생활을 조금만 해봐도 알게 되는 것들이다.

각자의 밥그릇을 놓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어디까지나 배려와 존중 그리고 위로는 내 밥그릇이 온전할 때 가능하다.


나 자신 또한 남의 밥그릇에 피해를 주는 일을 해선 안된다.


이러한 삶을 인정할 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퇴임하신 임원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내가 왜 그리 치열하게 살았을까라고 후회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이것 참. 누구보다 치열해서 그 자리에까지 올라간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라니. 그러나 그분들도 누군가의 부모님이고, 어느 한 가정의 가장이었으니. 더불어, 월급쟁이셨으니. 오죽했을까라는 동질감에 어느새 고개를 끄덕인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잠시 고개를 들어 보니, 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몰입과 열정이 아마도 누군가에겐 피해를 줬을 수 있다. 더불어, 나를 좋은 선배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을 이끌어주길 바랐던 후배 중에는 월급쟁이라서 우러나온 내 본심과 행동을 보고 실망한 친구가 분명 있을 것이다.


믿었던 사람, 따르던 선배에게 배신당했을 때의 기분은 나도 잘 안다.

지켜 줄거라, 도와 줄거라 믿었지만 내가 잠시 잊고 있던 건 그 선배도, 상사도 월급쟁이였다는 것.


그러니까,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

패러다임을 바꾸어, 아무리 높은 상사라 할 지라도 그분들 또한 월급쟁이란 걸 절대 잊으면 안 된다. 그러면 그분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과한 업무 지시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월급이란 힘은 과연 크고도 무섭다.

그러니까 함부로 생각할 것이 아니다. 그 힘은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꾸준한 데서 온다. 동시에, 어딘가에 소속되어 함께 굴러가고 있다는 안정감에서도 온다.


그러나, 언젠가 분명.

월급을 더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때가 분명 올 것이다. 그때의 후회를 줄일 수 있도록, 월급 이상의 것을 가져갈 수 있도록 괜한 기대는 접고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는지 깊이 고찰하는 관점과 마음이 필요하다.


월급쟁이가 아닐 때의 삶이 더 빛날 수 있도록!


P.S


혹시라도, 20년 전의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확실한 도움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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