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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18. 2020

내 얼굴도 모른 채 나이를 먹다니

밀물과 같이 몰려오는 서글픔과 미안함. 그리고 헛웃음.

글쓰기 강의를 하다 보면 참으로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난다.


그중, 한 분께 얼굴 컨설팅을 받은 적이 있다.

스타일과 컬러를 전문적으로 봐주시는 분인데, 온라인 교육 강의 동영상을 찍는다고 하니 스타일링 컨설팅을 해주시겠다고 한 것이다.


그저 인사치레겠거니 했는데, 얼굴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는 말에 나는 허둥지둥했다.

생각해보니 최근에 내 얼굴을 찍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러게, 나는 왜 내 얼굴을 스스로 찍은 적이 거의 없는 걸까?


이참에 골똘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 어떤 현학적 주제보다 더 깊게.


나는 사진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돌이켜보니 그것은 누군가에 찍힌 사진 속 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실물보다 납대대하게 나오거니와, 직장인이 되어 살아온 십 수년의 세월 때문인지 얼굴엔 먹고사는 고단함이 역력하게 읽혀서다. 어렸을 때 꿈이 월급쟁이는 아니었으므로, 아마도 내가 되고 싶었던 그 무엇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나를 부정하고 싶은 무의식이 작동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나는 사진 속 내 모습을 내 얼굴로 보는 게 아니라, 그저 여러 페르소나 중 하나로 흘깃 보고 마는 게 분명하다.


어찌어찌하여, 남이 찍어 준 사진과 셀피를 모아 그분께 보내드렸다.

정면으로 꽉 차게 얼굴 사진을 찍은 건 휴대폰을 사용 한 이후 처음인 듯하다.


마침내 스타일링 결과가 도착했는데, 과연 전문가답게 내 얼굴은 다각도로 분석이 되어 있었다.

요는, 이마가 (상대적으로) 좁고, 하관이 넓으니 시선을 눈과 코 주위로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에 나는 내 삶의 어느 일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이마가 훤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고 몇십 년을 그리 알고 살아왔는데, 과학적으로 나뉜 비율 표를 보니 정말 내 이마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넓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는, 이마만을 바라보며 나는 이마가 넓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 얼굴 전체의 비율로 보면 이마가 넓지 않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전문가의 조언으로 앞머리를 조금 내리고, 안경을 써 스타일링을 잘 한 덕에 온라인 강의 영상은 아주 잘 나왔다.

그러나, 내 얼굴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에 내 뒤통수는 얼얼했다. 그 얼얼함을 선사한 장본인은 다름 아닌 나였고, 그 얼얼함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나였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의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론 내 모습을 거부해왔던 것이 들통난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친숙하지 않거나 사이가 좋지 않으면 서로의 눈이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데, 꼭 그와 같이 나는 내 얼굴에 데면데면하고 있던 것이다.


갑자기 밀물과 같이 몰려오는 서글픔과 미안함. 그리고 헛웃음.


좀 더 내 얼굴에 익숙해져야겠다고, 지금 내 얼굴의 의미를 인정해야겠다고 나는 나를 달래고 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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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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