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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20. 2020

내 정서통장엔 무엇이 얼마나 들어 있을까

통장을 채우기 위해 살아온 삶, 정서통장을 채우기 위해 살아갈 삶

삶을 요약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통장의 관점으로 보면 그것은 매우 간단하다.


'통장을 채우기 위해 살아온 삶'


과연 그렇다.

지금도 그러하기 위해 살고 있고, 숨이 붙어 있는 한 그 운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통장 속에 쌓인 무엇으로, 우리는 무언가를 치환한다.

치환한 무엇으로 우리는 입을 즐겁게 하고, 배를 채운다. 그리곤 다시, 그것으로부터 얻어낸 힘을 통장에 쌓을 그 무엇으로 치환한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삶은 치환의 연속인 것이다.


내 나이 때의 사람들은 통장 하면 반으로 접힌 여러 장의 종이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내 주위 어디에도 그 종이의 흔적은 이제 없다. 다만 그 관념만이 존재하는데, 그 관념은 휴대폰 속으로 빨려 들어간 지 오래다. 그러니까, 나는 통장을 채우기 위해 살아가고 있고 휴대폰 속 그래픽으로 그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가상의 통장엔 나의 노동력과 수고가 0부터 9까지의 숫자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다 문득 내 마음속엔 무엇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궁금해졌다.

너무 오래 확인을 하지 않아서였을까. 비밀번호를 잊었는지, 그 마음은 잔고를 쉽사리 보여주지 않는다. 잘못하다가는 비밀번호를 영영 찾지 못할 수 있으니 나는 채근하지 않기로 한다.


분명한 건, 종이와 휴대폰 속 통장을 채우느라 내 '정서통장'은 제대로 돌아보지 못해 왔다는 것이다.


통장에 있어 중요한 건 '숫자'와 '단위'다.

그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단위'를 택한다. 숫자가 아무리 커도 단위가 작으면 의미가 없고, 숫자가 작아도 단위가 크면 그 의미를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마찬가지로 정서통장에도 '숫자'와 '단위'가 있다.

'숫자'가 '나이'를 뜻한다면, '단위'는 '마음의 크기'를 말한다. '정서'는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을 말하는데, 살아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감정을 만나게 되고 이를 제대로 담지 못하면 사단이 난다. 그러하기에, 정서통장에서도 '숫자'보다는 '단위'가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내 삶이 '통장을 채우기 위해 살아온 삶'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은 어떠해야 할까?

결론을 내기 전에, 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덕분에 사랑하는 가족과 영위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도 통장에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 다시 삶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면 나는 아래와 같이 정하고 싶다.


'(정서)통장을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삶'


어느 하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지만, 어느 하나는 채우면 채울수록 풍성해지리라는 기대와 함께.


그 둘 모두를, 또는 그중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채워 나갈 수 있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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