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Aug 26. 2020

나이 사십에 글을 쓰다니

또 다른 숨을 쉬고 있음에 나는 감사함을 토한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란 말이 있다.

삶의 과정에서 기대치 못한 일을 맞닥뜨렸을 때 우린 자동적으로 이 말을 떠올린다. 앉았다 일어날 때 '아이고'를 외치거나, 어떤 말이든 그 끝에 '~인 같아요'를 붙이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말이다.


우리가 맞이한 '지금'은 우리 인생의 가장 젊은 순간이다.

그러나, '지금'은 또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가장 늙은 순간이다.


그러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란 말은 어느 나이에서든 유효하다.

꼭 100세 이상을 살고 나서야 할 수 있는, 자격증이 필요한 어휘는 아니란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정확히 나이 사십에 했다.

글을 쓰고나서부터다.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말했다.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내 삶엔 '글'과 '책'이 없었다.


쓰는 건 손이 아파 싫었고, 읽는 건 지루해서 싫었다.

그게 다였다. 아마도, '글'과 '책'이 친근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 이유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지만 사십이 되어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글쓰기는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한 번 더 말해도 양해를 해줬으면 한다.

지금도 나 자신이 신기해서 그렇다.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젠, 손이 아프고 팔목이 아파도 글을 쓰고, 누가 떠밀지 않아도 책을 읽는다.


돌아보면 아마도 그것은 생존의 방법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그러하지 않았으면 어두웠을 내 삶을, 숨 쉬지 못해 한 발자국조차 나갈 수 없던 시간들을 이겨내기 위해 과거의 나는 뭐라도 찾아 헤집었을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이 되어 파헤친 그곳에, 흙이 덕지덕지 붙은 '글쓰기'가 있었을 것이다.

빛나진 않았지만 왠지 바로 이거다 싶어, 나는 그것을 주워내어 품에 안은 것이다.




나는 이제 글로 숨을 쉰다.

온갖 영감과 사색의 결과물들을 들이마시고,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로 그것을 내어 놓는다.


들숨과 날숨은 살아있는 것들의 전유물이다.

들숨과 날숨은 살아있는 것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며, 쾌감이자 고단함이다.


고단함의 정도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무거운 사십이라는 나이가 내게 준 글쓰기라는 선물이, 겉에 묻은 흙을 덜어내며 조금씩 조금씩 빛나고 있음은 삶의 역설이다.


그 다이나믹한 역설에 속이 울렁거리지만, 또 다른 숨을 쉬고 있음에 나는 감사함을 토한다.




스테르담 글쓰기 클래스(VOD)

스테르담 글쓰기 클래스(오프라인/온라인라이브)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매거진의 이전글 허리 펴고, 얼굴 펴고, 마음 펴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