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를 열었다고 알려진 신화 속 인물.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역사적인 해석을 낳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단군이래'란 말은 모두에게 통용된다. 즉, '시작'과 '출발점'을 알리는 상징이자 지금이라는 '현재'와 옛날이라는 '과거'를 한 줄로 쓱 그어버릴 수 있는 꼭짓점이다.
그러니, 시대의 급격한 변화와 과거와의 극단적 비교를 하려면 단군 할아버지는 소환되고 마는 것이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
단군 이래 돈 벌기 가장 좋은 시대.
그러나 나는, 이 말들을 곧이곧대로 듣거나 보지 않는다.
그 이면의 것을 보고 본질을 보려 한다. '단군'을 참조로 삼아 '최고, 최대'를 강조하지만 그 의미에 가려진 건 슬픈 껍데기일 뿐이다.
그러니까, 최고의 스펙이라서 일자리가 많아졌는가?
돈 버는 방법이 다양해져서 우리는 더 부유해지고 여유가 생겼나?
결국, 단군 할아버지의 소환은 시대의 역설을 오히려 더 강조하는 장치다.
글쓰기는 역설의 역설이다!
글쓰기는 이와는 좀 다르다.
읽는 사람보다 쓰려는 사람이 많아진 작금의 기이한 현상 또한 '역설'로 풀이되긴 한다. 사람들은 껍데기의 화려함을 치중하는 것에 염증을 느낄 만큼, 이 시대가 각박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설은 또 다른 '역설'을 낳는다. 이제야 비로소, 사람들은 내면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적 기준에 짓눌려하지 못했던 말들을 끄집어내고, 내가 내딛는 곳이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루한 이념으로부터의 해방을 맛보며, 내 이야기도 콘텐츠가 되고 돈이 된다는 걸 경험한 것.
말 그대로, 단군이래 글쓰기 가장 좋은 시대가 되었다.
그 이유를 좀 더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작가'는 더 이상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박을 낸 전업작가나 유명한 사람, 대학교수 정도는 되어야 '작가'라 부를 수 있는 시절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당장 SNS를 가봐도 스스로를 '작가'라 칭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책 한 권 내지도, 누군가 기억하는 글을 쓰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이러한 현상에 적극 찬성한다.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다'란 내 주장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 또한 쓰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 직장인일지라도, 다른 본업이 있더라도 쓰면 '작가'가 될 수 있는 말 그대로 단군 이래 가장 글쓰기 좋은 시대가 열린 것이다.
둘째, 내 글을 알릴 플랫폼과 출판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제는 누가 내 글을 알아줄 때까지 기다리는 시대가 아니다.
브런치, 블로그, SNS 등. 내 글을 담아내고 알릴 곳은 어디에든 있다. 출판 또한 자가 출판, 독립 출판, 크라우드 펀딩 출판, PDF 전자책 출판 등 셀 수 없이 다양해졌다.
이들을 잘 활용하면, 내 책 한 권 출판하는 일은 예전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친근한 이야기들이 글이 되고, 콘텐츠가 되고, 책이 되어 돌아다니고 있다.
셋째,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향수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시대의 역설이다.
물질적으로, 문명의 이기로 편리해졌다고 착각한 삶. 더 풍요롭고 여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우리는 더 탐욕스러워졌고 뭐하는지도 모르게 바빠졌다.
그러다 보니 이제야 우리는 '자아'를 찾으려 하는 노력을 한다.
인문학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를 향수해야 하는 이유다. 말 그대로, 문명의 이기는 수단이 되어야지 본질이 되면 안 된다. 속도와 편리함이 우리를 잡아먹게 두어선 안된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 속도와 편리함에 편승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글쓰기는 철저하게 아날로그다.
삶의 속도를 조절한다. 모니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내 글이 디지털로 기록되고 있긴 하지만, 그 글을 쓰는 건 나고 이어가는 것도 나이며, 결국 그 글의 주제는 나와 내 삶인 것이다.
이밖에도 100세 시대 제2의 인생을 위한 자기계발, 주 40시간 및 재택근무로 인한 글쓰기 시간 확보 등.
작가의 장벽이 낮아지고, 내 글을 알릴 기회가 많아지며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는 상황과 맞물린 여러 가지 기회들이 우리로 하여금 어서 마음의 펜을 들라고 부추기고 있다.
자, 그러니까 글쓰기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만, 디지털의 못된 습성을 배워서 '어떻게'하면 글을 빨리 쓰고, '어떻게'하면 책을 낼 수 있을까란 조급함은 글쓰기의 시작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들이다.
'왜'를 물어야 한다.
나는 '왜' 쓰고 싶은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지.
바쁘다고 관심 주지 못했던 나에게 침잠하면, 그리고 그 안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내고자 하는 절실함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