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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14. 2020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이 나를 힘들게 할 때

내 정체성은 내가 스스로 챙겨야 합니다.

"오랜만이네. 그런데,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왜 이리 상했어? 무슨 일이야, 어?"

"어, 나 회사 다녀."


회사 다니는 게 별거인 시대입니다.

이 글을 읽는 직장인 분들께서도 아마 힘들지 않은 분들이 없을 겁니다. 먹고사는 것은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의 연속이고 직장은 그 어느 곳보다 더 그런 면에서 가혹한 곳이라 할 수 있죠.


그런데, 직장을 다니다 보면 일이 많아서 힘든 게 아니라 뭔가 말할 수 없는 공허함으로 더 힘들 때가 있을 겁니다.

월급쟁이라서, 나의 꿈이 이게 아니라서, 부속품 같아서, 하루하루가 반복되어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서 등. 


이러한 회의감은 연차를 따지지 않습니다.

신입사원이나 부장님이나 같은 생각일 겁니다. 다만, 직급이 높아지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기에 덜 흔들리는 척할 뿐. 


더불어, 이 회의감은 직장인 최대의 적인 슬럼프의 단초가 되기도 하고 아예 그 자체가 슬럼프가 되어 직장인인 우리를 집어삼키곤 합니다.


직장인의 삶, 참 쉽지 않습니다.


대체 가능한 존재의
슬픔과 아픔


그런 제 마음을 한 참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왜 이리 힘들까?
내 마음을 스스로 불편하게 하는 이 느낌적인 느낌은 뭘까?


그리고 그 안에서 저는 '대체 가능한 존재'라는 문장을 찾아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직장인'이나 '월급쟁이'를 꿈꾼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마도 대통령, 과학자, 의사를 꿈꾼 사람이 더 많았을 거고요. (물론, 크리에이터도 포함입니다.) 

그러니까 '직장인'은 되고 싶어 되었다기 보단 어찌어찌하다 보니, 먹고살려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그렇다 보니,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그저 직장인이 된 걸까?'란 회의를 항상 하게 된 겁니다.

내가 아니라도 돌아가는 곳. 내가 아니라도 누구든 곧바로 나를 대체할 수 있는 곳. 대체 가능한 존재의 슬픔과 아픔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회의감'의 씨앗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런 대체 가능한 존재에게 '정체성'이란 게 있을까요?


직장인이라는 '정체성'


사실,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은 너무 확고해서 문제입니다.

회사, 업무, 직급, 직책이 나를 규정합니다. 그에 따라 나는 행동하고 말하고 일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나와는 다른 역할을 해내면서 한 개인은 인지부조화를 겪거나 자아분열합니다. 이를 건전한 자기 방어기제로 대응하면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지지만,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회의하고 아파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게 있습니다.

우리의 사춘기 때를 떠올려 볼까요? 사춘기는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입니다. 그때를 돌아보면, '정체성'이 모호해서 문제였습니다. 그러하기에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나 하나쯤은 세상에서 없어도 좋다는 멜랑콜리한 정서가 가득했던 겁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쩌면 직장은 참 고마운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제게, 확고한 그 어떤 '정체성'을 주었으니까요. 


얼마 전엔 일이 있어 다른 회사를 방문했는데, 리셉션에서 저에게 '어느 소속 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제 이름, 제 취향, 제 존재의 중요성은 중요하지 않은 겁니다. 은행 대출 창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돈과 치환할 수 있는 건 내 존재가 아니라, 회사 이름과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입니다.


솔직히, 저에게서 회사와 관련된 모든 것을 빼고 자신을 말해보라면 저는 얼마만큼 저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요즘 들어 글을 쓰다 보니 '작가'란 또 다른 정체성을 만들긴 했지만 여전히 본업은 직장인이고 그 정체성의 색채는 매우 짙은 게 사실입니다.


'정체성'은 찾아 헤매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요즘 저는 우리가 함께 살펴본 '회의감'에서 조금은 자유롭습니다.

직장인이라는 저의 '정체성'을 받아들인 지 꽤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마음의 소란함은 결국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발버둥 쳤기 때문에 일어난 모든 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겁니다.


이제야, '정체성'은 찾아 헤매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란 걸 알게 된 겁니다.

무언가 대단한 '정체성'을 찾아내어 확립해야 자아실현이 될 것이라 믿었던 것 같습니다. '정체성'은 절대적이지도 않고 고정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나이와 상황, 그리고 심지어는 기분에 따라서도 바뀔 수 있습니다. 


직장은 언젠가, 더 다니고 싶어도 다니지 못할 때가 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토록 거부하던 직장인이라는 정체성도 사라지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직장 이후 우리의 정체성은 뭘까요?


그것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숙제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숙제를 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고요.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열렬히 그것에 몰두할 때 어쩌면 그다음의 정체성이 좀 더 명확해질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정체성 이론 심리학자인 '마르시아'는 '위기'와 '관여'를 정체감 확립의 두 축이라 봤습니다.

얼마나 흔들리고 의문을 가져봤는지, 그리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에 몰두했는지.


지금 이 글을 봤다면, 내 정체성에 대해 한 번 깊이 고찰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내 정체성은 내가 스스로 챙겨야 합니다.


정체성을 부정해봤자 회의감만 든다는 건 이미 알았으니, 이제는 정체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더 나은 다음의 정체성을 위해서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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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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