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힘들법한 일을 겪었는데도 절대 굴하지 않는 사람. 된 발음 한 번 내뱉고는 자신의 길을 가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 분명, 상처의 깊이가 얕지 않을 텐데 훌훌 털고 일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도 저라면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부여잡고 슬럼프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며, '자기 합리화'나 '셀프핸디캡핑(자기변명)'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골골댔을 텐데 말이죠.
그들에게 주어진 어떤 힘은, 잠시 잠깐 그들 마음의 일부분을 변형시켰을지 모르지만 이내 그 마음의 원형이 회복되며 무용지물이 되는듯해 보입니다.
보고를 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상사에게 깨지기도 하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 지휘 하에 일을 하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하며, 맡은 프로젝트마다 성과가 나지 않아 마음이 소란스러울 텐데도 그들은 굳건합니다. 그러다 마침내 어떠한 성과를 내거나, 결국 무어라도 해내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견디고, 잘 버텼다고 해야 할까요? 허나 어쩐지 그런 말로는 그들의 행동과 성과를 다 설명하기 버거워 보입니다.
견디고 버팀 그 이상으로, 그들은 다시 일어나 튀어 오르고 맙니다.
'회복 탄력성'이란 단어의 의미를 몸소 보여주기 위해 그러하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회복 탄력성'의 힘
자, 그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회복 탄력성이 강한 사람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근자감'입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말이죠. 저는 이게 별로 없습니다. 근거가 있어야 용기를 낼 수 있고, 가진 게 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다고 믿는데 회복 탄력성을 가진 사람들은 애초부터 뭔가 자신만만해 보입니다. 저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저보다 무조건 뛰어나다면, 애초부터 그들도 어떤 역경이나 고난을 받을 일이 드물겠죠.
회복 탄력성이 강한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면, 이 이론에 모든 걸 끼워 맞출 순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매칭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존경하는 한 선배는 일을 조화롭게 하는 걸로 정평이 나있는데요.
그 선배를 보면 '감정 조절력'과 '소통능력' 그리고 '자아 낙관성'을 두루두루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라면 팔짝 뛰었을 일들에 대해서도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나보다 어린 후배가 내가 보낸 기한이 있는 메일에 답을 하지 않으면 저는 따지듯이 메일을 보내는데, 이 선배는 '바쁜가 보네, 언제까지 가능할까?'라고 재차 물어봅니다. 메일이 올 때까지 시간을 두고 말이죠.
감정 조절은 물론, 소통 능력까지 한 번에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더불어, 대화 속에서도 항상 '자아 낙관성'이 드러납니다.
잘난 체인 듯 잘난 체 아닌 듯 그 경계를 교묘히 타며 스스로를 드러내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그렇다고 그게 미워보이거나 싫지가 않습니다. 자기 긍정에 꽉 찬 이야기라, 자신 있어 보이고 때론 재밌게 들려 그 이야기에 빠져 들기도 합니다.
과연, 나는 어떤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근거
'자기 효능감'은 캐나다의 심리학자 앨버트 밴듀라가 제시한 개념입니다.
자기 효능성에 대한 기대(expectation of self-efficacy)와 자기 효능에 대한 신념(belief of self-efficacy)이라고도 불립니다.
다행히, '자기 효능감'을 연구하는 많은 심리학자들은 '학습'과 '성취'를 통해 '자기 효능감'이 형성된다고 말합니다. 즉, 후천적으로도 강화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자기 효능감'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한 번 볼까요?
첫째, '성공경험(Mastery experience)'의 기회를 늘릴 것
이는, '성취'의 순간을 많이 만드는 것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성취의 목표나 수준을 낮춰도 된다는 겁니다. 작은 것 하나부터 시작해 보는 거죠.
저는 완벽하지 않으면서 완벽하려는 잘못된 고집으로 무엇 하나 제대로 시작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한다면 당장 나가 30분만 뛰어도 되는데, '다이어트를 하려면 2시간은 뛰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라고 하면서 결국 2시간이라는 거대한 시간에 압도되어 시작도 못하고 맙니다. 그러나, 잠시 나가 10분 정도만 걷고 와도 이젠 스스로를 칭찬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기분이 한결 낫더군요.
성취 노트를 만들어, '오늘은 10분 걸었다'라고 적어 놓으니 그 효과가 배가 되는 걸 느꼈습니다.
둘째, '대리 경험(Vicarious experience)'를 늘릴 것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을 관찰하거나, 대리 경험을 통해 자기 효능감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독서'가 어쩌면 대표적인 '대리 경험'이 되겠네요. 또는 저처럼 '회복 탄력성'이 강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특성을 이렇게 글로 적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당장 우리 회사를 생각해볼까요?
우리가 어떠한 전략을 세울 때 경쟁사나 앞서 나간 회사를 Benchmark 해본 적 있을 겁니다. 이 또한 '대리 경험'이라 할 수 있고 그들의 잘한 점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역량을 키워 나갈 수 있는 거죠. 물론, 결과만을 놓고 관찰하고 분석하기보단 그 '과정'에 대해 더 깊게 파고다는 게 중요합니다.
셋째, '언어적 설득(Verbal persuasion)'입니다.
젊은 펜싱 선수가 올림픽에서 혼잣말로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던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결승전 도중, '나는 할 수 있다'라고 홀로 읊조리는 모습이 화면에 잡힌 것인데요. 세계랭킹 21위의 젊은 검객이 랭킹 3위인 헝가리 선수에 대역전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고 말았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자기 최면'과도 같을 텐데, 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를 '글쓰기'와 연결하고 싶습니다.
'언어'엔 '말'과 '글'이 포함되는데, '말'은 휘발성이 있지만 '글'은 휘발되는 '말'을 붙잡아 놓을 수 있습니다. 메모의 중요성을 일컬어 '적자생존=적는 자가 살아남는다'라고 해석을 하기도 하는데요. 확실히, 적어 놓으면 자기 최면의 효과가 더 큼을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기 최면은 물론 자기 확신을 더 강화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글쓰기를 통해 자존감을 많이 회복할 수 있었고, 적어 놓은 바람들의 대부분이 이루어진 작은 기적을 여럿 경험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밑도 끝도 없이 바라고 바랐던 책이 출간된 거죠. 그것도 5권 넘게.)
넷째, '생리적 흥분에 대한 인식과 해석(Perseption and interpretation of phychological arousal)'입니다.
'정서적 각성'이라고도 하는데요.
저는 일전에 '자극'과 '반응'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 있습니다. '자극'이 올 때 자동적인 '반응'을 보이지 말고 그 사이를 벌려 개입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린은 이를 두고 '인간이 가진 마지막 자유'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마음의 단계입니다.
같은 일이라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은 분명 달라질 겁니다.
저는 '자기 효능감'이 강한 사람이 '회복 탄력성'도 높다고 생각합니다.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을 보니 '자기 효능감'이 높다는 걸 발견했거든요. 그리고, 앞서 설명드렸듯이 다행히도 '자기 효능감'은 후천적으로 강화를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회복 탄력성'과 '자기 효능감'이 직장인에게 있어 '백신' 또는 '치료제'라 생각합니다.
슬럼프, 우울, 자괴감, 무기력, 번아웃을 예방하거나, 기어코 그것들이 찾아왔을 때 힘을 낼 수 있게 해 주는.
마지막으로,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에 수록된 '근자감' 중 일부를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직장인 분들이 마음 아프지 말고, 아프더라도 잘 이겨내며 스스로를 잘 추슬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