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도 '삶'에도 '퇴고'가 필요합니다.
중국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나귀 등에 앉아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퇴(堆)'로 할까 '고(敲)'로 할까?
자신이 지은 시의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골똘하다 그만 높은 관리의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가도는 끌려가 길을 가로막은 자초지종을 추궁받았습니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자 행차를 하던 관리가 "여보게, 그건 두드릴 고(敲)가 낫겠네."라고 말했습니다.
그곳을 지나던 관리가 마침 시인 한유였던 겁니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고, 동시에 '미는 것과 두드리는 것'을 고민하던 '퇴고'란 말은 '글을 지을 때 문장을 가다듬는 것'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글을 (완벽하게)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면 '좋은 글'은 한 번에 나오지 않는다는 걸 이내 깨닫고 맙니다.
글을 쓰면 쓸수록 '퇴고'의 중요성과 그 위력을 알게 되는 이유입니다.
고치고 고쳐도, 수 백 번을 밀고 두드려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은 있고, 완벽한 글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상당합니다.
아, 내가 주로 이 단어에서 맞춤법을 틀리는구나.
아, 내가 이런 어색한 표현을 많이 쓰는구나.
아,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도 확인 안 하고 글을 발행했구나.
모든 것이 깨달음이자, 나 자신을 더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퇴고'앞에서 자아는 겸허해집니다.
삶도 이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수 없이, 역경 없이 완벽하게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애써 조심해보지만, 우리 삶은 실수투성입니다.
나만 잘한다고 잘 살아지는 세상도 아닙니다.
그러니, 삶에도 '퇴고'가 필요합니다.
겸허해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수백, 수천 번을 고쳐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으로.
저는 '글쓰기'는 '삶쓰기'라고 주장합니다.
'글'에도 '삶'에도 '퇴고'가 필요한 걸 보면 제 주장이 헛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P.S
글을 쓰며 인생을 퇴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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