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플랫폼이 아니라 내 글쓰기의 목적
글쓰기 시작과 함께 시작되는 고민
글은 어디에 쓰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각자의 글쓰기에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그 목적이나 목표가 좌우된다. 혼자 쓰고 만족할 글이라면 일기장이나 다이어리에 쓰면 된다. 온갖 감정을 그 어떤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로이 내어 놓으면 된다. 독자는 '나'로 한정되므로, 나만 볼 수 있게 차곡차곡 쌓아가다 죽기 전에 태우고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기어이 남에게도 내어 보이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인정 욕구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을, 내가 내어 놓은 생각을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것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가치가 되어 돈이 되길 바라기도 한다. '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정받길 원하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이나 영향력을 미치고 싶거나.
혹은, 책이 되거나 돈이 되는 글쓰기를 지향하거나.
이 세 가지 목적의 공통점이자 전제 조건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내 글이 도달하여 읽힐 것이냐'는 것이다.
블로그 → SNS → 브런치
2015년 9월 글쓰기를 결심한 나도 그랬다. 소비적인 삶에 회의를 느껴 무언가를 생산해보고자 시작한 글쓰기는 막막함 그 자체였으나 블로그는 기꺼이 내가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글을 써 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그만 길을 잃었다.
왠지 글을 쓴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이내 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디자인 스킨을 바꾸거나 메뉴를 왼쪽에서 오른쪽 또는 위로 옮기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즉, 말 그대로 나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블로깅'을 하고 있던 것이다.
더불어, 블로그는 검색 목적의 콘텐츠를 담아야 하기 때문에 내 생각과 감정을 길게 내어 놓을 목적과는 결이 맞지 않았다.
검색이 잘 되는 키워드나 트렌드에 맞추어 글을 써야 했으므로, '내 목소리'를 쓰고 싶은 나에게 블로그는 회의감을 안겨 준 것이다. 물론, 블로그의 순기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 목적이 상위 검색 노출이 되어 많은 이웃을 모으고 광고 배너를 붙이는 게 목적이라면 블로그 글쓰기가 매우 적합하다.
그러나 내겐 그것이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블로그 글쓰기를 멈췄다.
글쓰기를 결심했던 그때부터 SNS 글쓰기가 유행을 했던 터였다. 짧은 글귀로 공감과 위로 또는 재치 있는 길지 않은 시들이 주를 이뤘다. 그 글들을 보며 나 또한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짧고 재치 있게 표현하기 위해선 결국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은유하거나 비하 또는 비틀어야 한다. 일색이 블랙 코미디가 되어 갔다.
게다가 그 대상의 대부분이 '직장인'이었는데, 직장인을 희화한 글들을 보며 공감하고 웃었지만 어느새 나는 내 얼굴에 침을 뱉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짧은 글은 내 생각을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다른 대상을 희화화하거나 깎아내리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이러한 이유가 <직장 내공>이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물론, SNS 글쓰기의 순기능을 나는 인정한다.
책 한 권 내지 않았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작가라 칭하고 꾸준히 짧은 글귀를 써 내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참 좋다. 말 그대로,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다'라는 걸 실천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블로그와 SNS에 글을 써도 가시지 않는 갈증은 나를 방황하게 했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도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러다 브런치를 만났는데, 그야말로 첫눈에 반해버렸다.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브런치 글쓰기 메뉴인 '에디터'는 미니멀하다.
말 그대로 '단순함의 미학'이 느껴진다. 글을 쓰고 싶게 만들고, 내가 마치 작가가 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검은 펜 하나 들고, 하얀 종이를 마주한 느낌.
기분 좋은 조우이자 경쾌한 대결이다. 그 하얀 여백에 나의 어떤 생각과 느낌을 내어 놓고 채워갈까 하는 기대감과 희열이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든다.
사람은 책이나 화면을 마주할 때 본능적으로 시선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브런치 에디터 왼쪽엔 아무런 메뉴가 없다. 메뉴는 우측에 소소하게 자리 잡고 있고, 다른 메뉴는 그마저도 문장을 드래그해야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글쓰기 플랫폼으로서 브런치의 장점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미니멀 인터페이스
내 글을 잘 정리해 주는 '브런치 매거진'과 출판 과정 경험을 선사하는 '브런치 북'
내 글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노출시켜 주는 시스템
출판 업계는 물론 다양한 업계에서 예의 주시하는 플랫폼 (ex. 출간 제안)
글을 모아 놓으면 개인 브랜딩 구축 가능 (ex. 강의 또는 협업 제안)
'작가'라는 호칭과 함께, 자꾸만 작가가 되라고 부추기는 시스템 (ex. 브런치북 공모전을 통한 출간 및 타 매체와의 콜라보레이션 이벤트 등)
사실, 내가 가장 장점으로 여기는 부분은 또 하나 있다.
바로, '브런치엔 절망이 있다'라는 것이다. 브런치는 쓰는 사람이나 브런치 모두 수익 구조가 없다. '수익'이 관여되지 않으니 글이 진솔해진다. SNS나 블로그엔 절망이 있어선 안된다. 그것들엔 각각 '있어빌리티'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가 있어야 한다. '있어빌리티'와 '정보'는 곧 수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목소리'보다는 남이 볼 때 있어 보이고 멋지고 예쁜 콘텐츠들만이 살아 남고, 글을 쓰더라도 '나'가 기준이 아닌 '남'을 기준으로 써야 하는 것이다.
브런치 글이 진솔한 이유다.
아름답고 멋진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라, 이혼과 퇴사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진솔한 우리네 이야기가 그득하다. 글쓰기의 목적이 '나를 알아가고, 나를 표현하고,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면 브런치는 그야말로 최고의 플랫폼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길게 보면 수익은 물론 개인 브랜딩까지 가득하다. 7권의 책이 별도 투고 없이 브런치를 보고 연락을 준 출판사를 통해 출판되었다. 강의 제안은 물론 TV 출연까지 모두 브런치를 통해 제의받았다. 내 글쓰기 수강생 분 중엔, 출간된 책이 없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잘 관리하여 강연 요청을 받는 분도 있다.
이 이상의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싶다.
당장 광고 배너를 붙이지 못한다고 수익구조가 없다고 말할 순 없다. 길게 보면, 오히려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브런치'인 것이다.
중요한 건, 플랫폼이 아니라 내 글쓰기의 목적
위에 열거된 내용이 다소 주관적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합리적인 비교와 예시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플랫폼이 아니라 내 글쓰기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줄곧 강조하였듯이, '어떻게'아 나이라 '왜'를 떠올려야 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글쓰기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그 누구도 해줄 수 없고, 플랫폼이 해답을 찾아줄 성격의 것이 아니다.
플랫폼은 '수단'이다.
'본질'은 '글쓰기'다. 많은 분들이 이 부분을 간과한다. 마치, 생산성 도구가 내 생산성과 의지를 책임져줄 거라 생각하는 것과 같다.
내 글쓰기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먼저 명확히 하고, 여러 글쓰기 플랫폼을 좋은 '수단'으로써 활용해야 한다.
단기간 사용해보고 당장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이리저리 플랫폼을 옮겨 다니는 것은 좋지 않다. 더불어, 처음부터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는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
'내 목소리'를 글 속에 녹이고 표현하는 게 최우선이어야 한다.
그래야 글쓰기의 목적이 선명해지고, 선명해진 목적은 글쓰기에 최적화된 그 어떤 플랫폼을 득달같이 찾아낼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생각해봐야 할 건.
'어떤 플랫폼을 선택할까'보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다.
'본질'과 '수단'을 구분할 때, 우리 삶은 좀 더 선명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