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에 충실하되, 부캐는 몰래 키워야 한다.
글쓰기를 한 후 가장 큰 후회 중 하나
글쓰기는 내 인생에 있어 기대하지 못한 선물이자 축복이다.
내가 글을 썼는데, 글이 나를 변화시킨다. '물아일체'로 이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제는 글쓰기로 숨을 쉬고 있다고 해도 그리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그저 흘려보던 일상이 특별해지고 소중해짐과 동시에 '나'라는 존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글을 쓴 이후 변한 건 마음가짐뿐만이 아니다.
내 글이 콘텐츠가 되고 책이 되어 출판되었으며 여러 강연의 기회를 얻었다. 나는 그저 내 목소리를 내고 깊이 생각한 것을 내어 놓았을 뿐인데 그것이 누군가에게 도움과 가치가 되고 있단 뜻이다. 이 과정에서 오는 창작의 희열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자기 효능감은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에너지다. 더불어,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되어 나에게 돌아오니 '일석이조'를 넘어 '일석다조'가 된다.
그런데, 만약 내가 글쓰기의 초반으로 돌아간다면 하나 바로 잡고 싶은 게 있다.
바로, 나의 글쓰기를 주위에 스스로 알리고 자랑했던 경거망동함이다.
본캐와 부캐 사이
나는 한 직장에서 근 20년을 일해왔다.
그 이야기는 이 회사에서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해왔단 이야기다. 즉, 나의 현재 본캐(본 캐릭터)는 '직장인'이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알람 소리에 깨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한다. 당장 회사를 그만둘 생각도 없다. 나는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회사는 언젠가 다니고 싶어도 더 다니지 못할 때가 온다. 게다가, 많은 영감과 이야기의 소재가 직장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니 그 소중함을 점점 더 알아가고 있다.
이러한 깨달음과 마음가짐은 모두 '글쓰기'로부터 왔다.
글쓰기 전에는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가 너무 버거웠는데, 글을 쓰며 나를 돌아보니 오히려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난 직장인은 반드시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하니 부캐(부 캐릭터)가 생겼다.
바로 '작가'와 '강연가'다. 직장인으로서 무색무취의 삶을 살고, 사무실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내게 살아서 펄떡이는 새로운 페르소나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내 이름으로 된 책이 나오고, 강연을 하게 되니 나는 들떴다. 내가 '스테르담'이라며 직장과 동료들에게 나를 떠벌리고 다녔다. 그때를 돌아보면 나는 취해있던 것 같다. 누가 들어주지 않아도,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데도 나는 '내 귀는 당나귀 귀'라는 걸 소리친 셈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가 심각하게 돌아간다는 걸 느꼈다.
회사에서 나는 (내가 바랐던) 일도 잘하고 다양한 활동도 하고 있는 능력 있는 인재가 아니라, 딴짓하는 요주의 인물이 되어 있었다. 나를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은 내 글을 악의적으로 편집하여 의도를 곡해하여 퍼뜨리기도 했다. 책 여러 권 냈으니 언제 퇴사하냐는 비아냥 거림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었다. 내가 쓴 글에 있는 예시를 들며 이게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늘었다. 간혹 실수라도 하면 딴짓하느라 정신이 없나 보다는 피드백이 여지없이 따라왔다.
숙취가 사라지니 머리가 지끈했다.
글쓰기를 시작한 게 잘못일까란 회의를 하기도 했다. 결국, 그 모든 건 내가 만든 숙명이었다. 내가 벌였으니,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이자 고난.
본캐와 부캐 사이에서 나는 흔들리고 말았다.
나와 내 글을 알려야 하는 대상은
주위가 아니라 주위를 벗어난 저 너머다
이렇게, 나의 글쓰기를 주위에 알리면 좋은 일보단 그렇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진다.
글을 쓰는 소재도 한정되고, 어떤 이야기를 쓸 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일반화하여 쓴 글도 누군가 와서 내 이야기를 왜 썼냐고 한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저자는 독자의 해석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나와 내 글을 알려야 하는 대상을 넓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책이 나왔다고 자랑하고 싶어 주위에 알리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지만 별 소득 없이 실망감만 마주하게 될 것이다. '무당도 먼 데 무당이 용하다'란 말처럼, 내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기대를 크게 하지 않는다.
주위 사람에게 자랑해봤자 소용없다.
내 영역 안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건 소득 없는 사투다. 내 대상은 우물 밖이 되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실력이다. 주위를 벗어나 저 세상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목소리를 전하고 인정받아야 한다. 범위를 넓혀 고민할 때, 더 큰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그게 진짜 '선하고 강한 영향력'이다.
내 주위는 그저 일상으로 놔두는 게 좋다.
본업에 충실하되, 부캐는 몰래몰래 키워야 한다.
물론, 내가 숨긴다고 해서 이것이 알려지지 않거나 하진 않는다.
어느 수준으로 내 부캐가 성장하면 주위 사람들이 알음알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드러내는 것'과 '드러나는 것'의 차이는 크다. 가볍게 떠벌리며 드러내는 것의 말로는 내가 이미 위에서 설명했다.
묵묵히 본업과 사이드 프로젝트를 균형있게 병행하는 마음가짐은 '드러나는 것'에서 온다. 경거망동하게 드러낸 과거의 나 자신을 후회하는 이유다.
앞서 이야기했듯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분명 글쓰기를 좀 더 일찍 시작할 것이다.
더불어, 내가 '스테르담'이라고 글을 쓰거나 책을 내고 강연을 한다고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내 우물 밖을 바라보고 우물 밖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우물 밖의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지를 좀 더 고심할 것이다.
나의 요동과 흔들림이 누군가에겐 꼭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으로 이렇게 글을 남긴다.
많은 분들이 본업과 글쓰기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의미 있는 흔들림을 경험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