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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11. 2021

시간을 버는 힘, 몰입

얼마의 시간이 확보되느냐 보다, 얼마나 몰입했는가

시간 개념의 왜곡 현상


시간은 절대적인 것일까, 상대적인 것일까?

'시간'은 인류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시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 것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이고 철학자는 물론 과학자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관여되어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시간'을 함부로 정의하지 못한다. 1분은 60초, 1시간은 60분이란 개념을 들이대면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카를 융의 동시성 이론' 등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이론을 적용하면 시간의 절대성은 와해된다.


평소에 책을 쳐다도 보지 않다가, 어느 소설에 빠져들어 단숨에 책 한 권을 읽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 분 일초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서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순간이 오면 내가 알던 시간의 개념은 평소보다 훨씬 더 쪼그라들어 있다. 반면, 군대에 있거나 지루한 강의를 듣고 있다고 떠올려보면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시간은 굼벵이보다 느리고 더딘 시간 안에 갇힌 나는 평생 그곳묶여있을 것만 같다. 유한한 존재가 무한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시간은 그리도 느리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처럼, 시간은 절대적이기도 하고 상대적이기도 하다.

특히, 시간 개념의 왜곡은 주관에 따라 얼마든지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할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몰입이라는 대단한 힘


시간을 왜곡시키는 강력한 힘을 우리는 '몰입'이라 한다.

몰입의 도에 따라 시간에 대한 주관은 극명하게 갈린다. 위에서 언급한 재밌는 소설책을 읽을 때나 연애할 때의 사는 몰입의 정도가 큰 상태다. 그와 반대되는 상황은 당연히 몰입의 정도가 작다.


몰입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심리학자가 있다.

바로, 헝가리 심리학자인 '칙센트 미하이'다. 그는 몰입했을 때의 느낌을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20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그 무엇보다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는 평범한 결론에 도달했는데, 칙센트 미하이는 그 행복의 정도를 '몰입'의 정도와 동일시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역량'과 '주어진 과제'에 따라 몰입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모형


이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 모형에 따르면 크게 다음 네 가지의 상황을 가정해볼 수 있다.

개인의 역량은 낮은데 난도가 높은 경우: 몰라서 무섭다. 자포자기하게 된다.

개인의 역량은 높은데 난도가 낮은 경우: 지루함과 심심함이 몰려온다. 집중하기 어렵다.

개인의 역량도 낮고, 난도도 낮은 경우: 시행착오의 단계. 더 나아지려면 실력을 키워야 하는 단계다.

개인의 역량도 높고, 난도도 높은 경우: 몰입할 가능성이 높다. 뛰어난 역량에 걸맞은 도전이 주어지면 그 둘이 서로 시너지를 내어 평소의 110%, 120%의 역량까지 이끌어 낼 수 있다.


표로 그려낸 칙센트 미하이의 이론은 우리의 모든 몰입 상태를 설명할 순 없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와 몰입으로 인한 느낌과 의미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우리가 어떤 때 좀 더 몰입할 수 있는지, 즉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규명하려는 노력이므로 충분히 참고할 가치가 있다.


시간을 버는 힘, '몰입'
그리고 그 조건들


우리는 '시간 관리'를 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어왔다.

그럼에도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돈이 부족하면 어디선가 빌리면 되지만, 시간은 그러하지 못한다. 그러나 '몰입'이란 개념을 대입하면 그게 가능해진다. 한 시간을 두 시간처럼 보낸다면? 하루 안에 이틀의 성과를 낸다면? 말 그대로 시간을 벌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을 버는 방법과 힘.

그것이 바로 '몰입'인 것이다.


나는 몰입하여 많은 글을 써낼 때 희열을 느낀다.

바꿔 말하면, 나는 글을 쓸 때 몰입을 잘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시간을 번다는 생각이 든다. 몰입하여 써낸 글들이 다른 일의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멀티태스킹을 잘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많은 뇌신경학자들이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을 내어 놓고 있고,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 가지 일에서 다른 일로 빠른 전환을 하는 것을 멀티태스킹이라 오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불어, 멀티태스킹을 노력할 때마다 과도한 인식의 비용이 들고, 업무의 질과 효율은 낮아진다는 걸 밝혀냈다.

나는 글을 쓸 때, 메시지를 확인하고 메일을 보고 SNS를 확인하는 좋지 않은 습관이 있었다. 글이 쉽게 써지지 않으니, 당장의 욕구불만 회피를 선택하는 것이다. 무언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욕구불만을, 당장 처리할 수 있는 무언가로 대체하려는 시도다. 그러면 이도 저도 안된다.

그래서 글 쓸 때만큼은 '몰입'하려 노력했다. 당장의 허위적인 멀티태스킹을 중단하고 오롯이 글쓰기에 집중하는 것. 글 하나 쓰기도 힘들었던 내가, 여러 편의 글을 써내고 있는 이유다.


당장의 '욕구불만 회피'를 벗어나 내가 글을 써낼 수 있는 몰입의 방법.

돌아보니 다음의 것들이 몰입을 도와주는 강력한 조건들이었다.


첫째, '왜'를 묻고 명확히 한다.


열심히 뛰다가 문득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있다.

'내가 왜 뛰고 있는 거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란 생각과 허무함이 몰려오는 것이다. 그럴 땐 여지없이 멈추게 된다. 몰입은 깨진다. 애초에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다. '왜'를 규명하지 않으면 순간순간 집중할 수 없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마다, 또는 글쓰기가 죽도록 하기 싫을 때마다 '왜'라는 이유를 떠올려야 한다.

'왜'라는 이유는 바로 '목적'이다. 내가 무언가를 하기 위해 결심했던 그 목적. 목적을 떠올리면 좀 더 몰입할 수 있다. 실제로, 글쓰기가 중단될 때마다 나는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 글을 쓴다'라는 내 글쓰기 목적을 떠올린다. 애초에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칙센 미하이의 이론에서, '자신의 역량'과 '주어진 과제'를 규명하는 단계라고도 할 수 있다.


둘째, 생각에도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글에는 '서론-본론-결론'이 있고, 소설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즉,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다. 운동을 예로 들면 더 쉽다. 본 운동을 하기 전에 준비운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더 안전하게, 더 좋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이 생각에도 적용된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책상에 앉아 그때부터 글을 쓰자고 하면 전혀 써지지 않는다. 흰 여백과 혀를 날름거리는 것과 같은 커서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책상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준비 운동 없이 글쓰기를 하려 한 결과다. 글을 쓰려면 평소부터,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고 그 느낌을 메모하여 출근길이나 퇴근길에 그것들을 곱씹어야 한다. 즉, 글쓰기와 사색의 준비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책상 앞에 앉았을 때, 나는 좀 더 몰입할 수 있게 되고 더 많은 글을 내어 놓을 수 있게 된다.


생각에도, 몰입에도 준비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칙센 미하이도 몰입의 정도는 전문성과 관심이 중요한 요건이라고 말했다.


셋째, 반복의 소중함을 상기한다.


개인의 역량은 낮은데 과제의 난도가 높은 경우.

또는 개인의 역량도 낮고, 과제의 난도도 낮은 경우. 공통점이 있다면 '개인의 역량'을 늘려야 하는 단계라 볼 수 있다. 내 역량이 높아야 우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 '자신감'은 몰입의 중요한 요소다. 과제의 난도를 떠나,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달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긍정적인 보람과 성취를 얻을 수 있다.


개인의 역량을 높이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반복'이다.

멋진 근육을 만들어 내려면 역기를 들었다 놨다 반복해야 한다. 단단한 철이 되려면,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에 반복하여 담가져야 한다. 우리는 보통 '반복'하면 '지겨움'이라 생각하지만, 반복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는 지겨움에 그 소중함을 잊고 있는 것뿐이다.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새 내 실력은 일취월장해있다.

'질의 글쓰기'가 아니라 '양의 글쓰기'를 강조하는 이유다. 글을 조리 있게 잘 쓰지 못한다거나, 필력이 없다고 느껴 글쓰기가 막힐 때 우리는 그저 써야 한다. 글쓰기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반복하다 보면 몰입하는 경우를 우리는 삶에서 많이 마주한다.




이밖에도 잠을 충분히 자 에너지를 확보하는 일, 그리고 자기 객관화를 통해 나와 과제의 수준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몰입'을 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시간은 대출받을 수가 없다.

그러나, 같은 시간이라도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는 이자를 얻을 수도 있다. 심지어는 시간을 오히려 더 벌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몰입'이 주는 선물이다.

효율성을 위해 시간을 쪼개는 것도 중요하고,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확보된 시간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알차게 쓸 수 있는지다.


돌아보니 나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확보되느냐 보다, 확보된 시간에 나는 얼마나 더 몰입했는가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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