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렇지 않다. '여행'이란 단어를 좀 더 폭넓게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꼭 장소를 바꾸지 않아도 여행이라 여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여행 중 최고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나에게로의 여행이다.
'나'라는 미지의 세계는 흥미진진하다. 그 흥미진진함은 알지 못하는 것에서 온다.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한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는 말에 동의하는 이유다. 우주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모든 것은 이론일 뿐, 끝까지 가보지 못했고 지식으로 다 파헤칠 수도 없다.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젊은 날에 나는 그리도 바깥을 쏘다녔다.
모든 정답은 저 너머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았다. 기어코 그 어느 곳에 도달하고 점령해야 나는 답을 얻어낼 수 있다고 믿었나 보다. 짐을 싸 떠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짐을 싸지도 않은 채 떠났다. 새로운 곳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나는 이방인이었고, 이방인으로 대접받는 느낌은 새로웠다. 그 느낌에 취하고, 중독되어 나는 습관적으로 서성였다. 돌아보니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방황이었다.
지금 나에게 여행을 떠나라고 한다면 나는 나에게로의 침잠을 택한다.
여행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활성화되는 마음의 화살표가, 이제는 바깥이 아닌 안을 향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얻을 게 있나, 새로운 게 있나 떠났던 나는 빈 손으로 돌아온 적이 더 많다. 여행지에선 무언가를 만끽해야 한다거나, 하나라도 더 둘러봐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기억이 가득하다. 말 그대로 내가 휴대폰의 배터리라면 방전에 방전을 거듭한 느낌.
그러나 '나'라는, 안으로의 여행을 떠나면 무언가 충전되는 느낌이다.
글을 쓰면서, 책을 읽으면서, 사색하면서. 이전엔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통해 나는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어 간다.
아직도 세상은 내가 가보지 않은 곳 투성이고, 보고 즐길 것들 천지다.
평생 남은 힘을 쥐어짜도 나는 그것을 다 누릴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포기하자는 건 아니다. 어느 좋은 장소에 이르면, 나에게로의 여행이 더 잘 되는 곳도 있으니까. 즉, 예전의 여행은 장소를 바꾸고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수준의 것이었다면, 지금의 여행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 위한 과정이다. 물론, 이제는 굳이 장소를 바꾸거나 어디로 떠나지 않아도 나는 제법 내 안으로의 여행이 자연스럽다.
결국 모든 해답과 즐길 거리는 내 안에 있다.
어디 멀리 간 여행지에서 의미를 따오는 것도 나다.
장소가, 낯선 분위기가 나를 새롭게 해 준다는 생각은 바뀐 지 오래다.
이제는 내 안으로의 여행 일수를 좀 더 늘리려 한다.
무겁고 번잡한 짐은 잠시 내려놓고서.
인간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세상을 여행하고 집에 돌아와서 그것을 발견한다. - 조지 무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