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가방을 산 적도, 스스로 짊어진 적도 없는데.
고등학교 때였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었으므로, 학교에는 사물함이 없었다. 그러니까 필요한 모든 것을 가방에 넣어 넣고 다녔어야 했다.
당시엔 망치 가방이란 게 있었다.
한쪽 어깨에 매는 원통형의 긴 가방으로, 무엇이든 쑤셔 넣으면 들어가던 가방이어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7교시에 해당하는 교과서와 체육복, 교련복에 (교련복이 뭔지 모르시는 분들은... 검색을...), 점심은 물론 야간 자율학습을 위한 저녁까지 싸갔어야 하니 지금 생각하면 망치 가방이 두 개는 있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던 어느 날,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가방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가방조차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돌이켜보니, 그 가방 안엔 물건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조금은 융통성 있게 놔두고 가도 될 것들도 모조리 욱여 놓은 내 근심과 걱정, 불안들도 함께였다.
그러니, 가방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모두 빈손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가방을 짊어지게 된다. 신기하게도 가방을 가지고 다녔어야 했던 나이와, 세상 근심을 조금씩 알아간 그 시기가 일치한다. 가방이 필요하다는 건, 집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때를 뜻한다. 세상에 나간 우리는 들고나간 그 가방에, 더 큰 짐을 넣어 돌아온다.
이 반복을 나는 '삶'이라 부른다.
삶은 그러한 것이다.
어릴 땐 끊어진 가방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 가방 줄에 짓눌렸던 내 어깨를 떠올린다.
왜 나는 온갖 근심과 걱정을 그 가방 안에 다 담았을까. 몇 권의 책은 뺐어도 되고, 체육복 넣을 자리가 없었으면 한 번 정도는 친구에게 빌려도 좋았다. 목표만 높게 잡고 보지도 못할 문제집은 과감히 집에 두고 갔다면 내 어깨는 조금은 덜 짓눌렸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만큼 키가 크지 않은 게 혹시, 그 때문이 아닐까란 합리적인 의심이 들 정도다.
어찌 되었건, 나는 내가 감당하지 않아도 될 짐들을 스스로 짊어지고 다닌 것이다. 내가 미련하니, 그 튼튼하던 가방이 저 스스로를 끊어뜨려 짓눌린 어깨를 좀 펴라고 나에게 말을 걸어준 건 아닐까.
살아가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가방이 내 등에 들러붙어 있다.
그 가방 안에는 가장으로서의 무게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 앞날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분명 집에서 나갈 땐 짊어질만했던 가방이, 세상과 아웅다웅하고 집으로 돌아올 땐 끈이 끊어질 정도로 무거워져 있다.
고등학교 때 끊어졌던 그 가방을 다시 떠올려, 나는 또 미련하게 무엇을 그리도 많이 담았나를 돌아본다.
무언가 뺄 것이 있을 것이고, 세상에 그저 놔두고 와도 될 것이 있을 텐데. 그리고 태어날 땐 분명 나는 이 가방을 들고 태어나지 않았었을 것이므로 가방을 탈탈 털어, 버릴 건 버리고 놔두고 갈 건 놔두자고 다짐한다.
어차피, 이 세상과 이별할 때도 내 손이나 어깨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게, 그러고 보니...
나는 이 가방을 산 적도, 스스로 짊어진 적도 없는데.
이 무거운 가방은 대체 누구의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