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늦췄더니, 꽤 남는 장사가 된다.
산책의 매력을 느낀 건 유럽 주재원으로 있을 때였다.
하루하루가 숨 막히고 고되던 시절.
모든 게 내 탓이었고, 모든 게 내 책임이었다. 책임의 범주는 기대보다 컸고, 권한의 범주는 예상보다 작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날들의 반복.
많은 것들을 체념한 어느 날.
나는 사무실 근처를 휘 둘렀다. 전쟁터와 같던 사무실을 나오니 바람이 불었다. 꽃이 있었다. 작은 운하가 있었고, 햇살이 있었다. 아, 정말 몇 년 만에 알아본 신세계였다. 마음의 팍팍함은 주위에 있는 당연한 것도 그리 몰라보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점심시간에 웬만하면 산책을 했다.
말 그대로 느긋한 기분으로 한가로이 거닐며. 짧은 점심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전쟁터 속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걸었다.
그게 그렇게 내게는 위안이었다.
그다음으로 산책의 매력을 느낀 건 글을 쓴 이후다.
글쓰기와 산책은 궁합이 꽤 잘 맞다. 산책을 하면 여지없이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소재가 마구 생겨 난다. 바람에 흔들리는 물풀과 나는 눈을 맞추고 대화한다. 내가 흔들리는 걸까, 네가 흔들리는 걸까. 스쳐간 바람은 온 데 간데없고 덩그러니 남은 건 나와 물풀이다.
그러면, 집으로 돌아와 나는 물풀과 나눈 대화를 글로 적는다.
산책을 고리타분하다 생각한 때가 있었다.
아마도 그땐, 격렬한 것만이 진짜라 믿었던 때였을 것이다. 땀을 흘리고, 온 힘을 다해야 뭐라도 한 것만 같은. 젊음이라는 자부심과 자만심이 공존하던 그 어느 때. 그때를 돌아보면, 그 기억은 또렷하진 않지만 환한 무언가가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느려진다.
민첩성이 떨어진다. 산책은 민첩성과 거리가 멀다. 빠릿빠릿하거나 서두르는 조급함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 가며 산책과 좀 더 친근해지는 이유일 것이다.
사실, 산책을 하다 얻는 글감은 하나가 아니다.
걷다가 멈춰 메모를 하고, 조금 더 가다 생각난 무언가를 또 적어 놓고.
가뜩이나 빠르지 않은 산책 길에, 나는 좀 더 머뭇거린다.
그러나 그 머뭇거림이 나는 좋다.
이제까지 그렇게 헐레벌떡 살아온걸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산책 한 번에 글 하나.
아니, 때론 여러 개.
속도를 늦췄더니, 꽤 남는 장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