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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16. 2020

중년이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떡볶이는 과학과 심리학 그리고 인문학을 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쥐도 새도 모르게 중년이 되었다.

마음은 초록인데 머리는 회색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젊음과 노년 사이 중년은 뭔가 그렇게 어중간하다. 검은 머리도 아니고 백발도 아닌 회색 인간의 숙명이다.


중년에게 삶의 재미는 뭘까.

플러스든 마이너스든 늘어나는 자산과 커 가는 아이들이 전부일까. 아직 어디로부턴가 쫓겨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알량한 감사함일까.


결국, 시야는 나를 향한다.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지?

나는 무엇을 해야 가장 빛이 나지?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먹고살다 보면 이런 질문을 할 겨를이 없다.


그렇다고 답이 쉬운 것도 아니다.

겨우 이러한 질문을 떠올려도 내 입은 어버버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런 가볍지 않은 고민을 하다가도 문득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퇴근길에 떡볶이를 자주 사들고 집으로 가는 이유다. 떡볶이와 중년은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난 꿋꿋하게 좌판 앞에 서서 김이 모락모락 한 떡볶이가 포장되기를 기다린다.


내 기억 첫 번째 떡볶이는 어느 태권도장 앞의 작은 포장마차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그 시뻘겋고 말랑말랑한 음식은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의 맵기였다. 포크로 떡 하나를 집어 들면, 여지없이 그 떡은 어묵 국물로 향했다. 휘휘 저어 허옇게 붉은 옷을 벗은 떡을 입에 넣어도 그 맛은 매웠다.


그러나 맛있었다.

입 안이 얼얼해도, 도저히 멈출 수가 없는 맛이었다.


나는 떡볶이가 왜 그리 인기가 많고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지 잘 안다.

사실, 한국 사람들은 '매운맛'을 좋아한다고들 하는데 이는 표면적인 것이다.


맵기만 해선 안된다.

그것은 '얼큰'하거나, '달콤'해야 한다. 떡볶이는 후자에 해당한다.


매콤한 맛은 스트레스를 경감하고, 단 맛은 기분을 좋게 한다.

떡볶이는 과학과 심리학 그리고 인문학을 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불어 공통의 기억과 정서를 기반으로 한다.

김치와 라면처럼 장복하면 박이는 인이 우리네에게 깊게 배어 있다.


가족들과 늘어놓고 먹는 떡볶이는 더 매콤 달콤하다.

스트레스는 온 데 간데없고, 기분 좋은 달콤함만이 입가에 남는다.

때로, 포장마차에서 혼자 먹는 떡볶이도 마찬가지다.


그제야 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언제 행복함을 느끼, 무얼 해야 가장 눈이 반짝이는지를.


그 질문과 대답하는 사이 떡볶이는 줄어든다.

얼마간의 대파와 양념만이 남았을 때, 기분이 좋아짐을 느낀다.


그것이 떡볶이 때문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존재를 인식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중년이지만 떡볶이는 계속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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