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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08. 2021

지우고 싶은 순간들

지금이라는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잊고 싶은 순간을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 지우개를 들고는 미래가 아닌 과거로 뛰어들어갈 것이다. 미래에는 지우고 싶은 순간이 없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이므로, 오히려 지우기보단 그리고 싶은 순간들이 더 많을 것이다. 아마도 지우고 싶은 순간은 과거의 내가 그렸던 미래가 현재가 되었을 때, 내가 그린 그림과 다른 것들에 당황하여 속히 없애고 싶은 파편들일 것이다.


즉, 지우고 싶은 순간은 언제나 과거에 있다.


우리네는 생각보다 더 과거에 얽매여 살고 있다.

지금 내가 힘든 이유는 대부분 과거에 있을 가능성이 높고, 트라우마라는 마음의 흉터는 과거에 맞이했던 그 어떤 경험이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된 건 다 과거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심리 치료를 하기 위해선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다 끄집어내야 하고, 결국 그것들 안에서 마음이 힘든 원인을 찾아내게 된다. 오늘의 내가 멋지게 인생을 바꾸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관성은 생각보다 빠르고 무겁다. 쉬이 과거를 버리고 미래를 바꾸자고 말해선 안된다. 그 누구의 과거를 100% 이해하지 못하고 내뱉는 그 말을 나는 다름 아닌 오만이라 일컫는다.


그래서 내게 과거의 어느 순간을 지우고 싶냐고 묻는다면 아래와 같이 대답할 것 같다.

그저 괴롭거나 슬펐던 그 어느 순간을 지우려 하기보단, 다시 그릴 수 있는 그 순간을 지우고 싶다고 말이다. 과거 어느 순간을 지우기만 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것이 단지 내 기억에서만 사라지는 것인지, 유기적으로 얽히고설킨 그 모든 것이 함께 지워질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요는, 다시 그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과거의 그 어떤 것도 지울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내 삶을 살아오면서 쭉 이어진 선을 그려왔을 것이다. 그것이 내 역사라고 해도 좋다. 그것은 굴곡을 그렸을 것이고 내가 지우고 싶은 순간은 아마도 최저점의 그 어느 순간들일 텐데, 그곳을 지우면 내 개인의 역사는 끊기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저점은 고점으로 가는 발판이라 해도 좋다. 그 발판을 지운다면 고점도 사라지게 될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니, 그저 순간을 지우겠다는 생각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사실, 지우고 다시 그릴 기회 따윈 전혀 없다는 건 누구라도 안다.

그저 그러고 싶단 바람만이 있을 뿐이다. 그 바람이 좀 더 나아가 타임머신이란 영화나 소설을 만들 뿐. 아직까지 우리는 내 삶의 과거 어느 순간을 지우거나 다시 그릴 수 없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우고 싶은 순간을 덜 만드는 것뿐이다.

지금까지 그려온 선을 되돌아보고, 내가 가진 펜과 지우개로 지금이라는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 그것이 미래에 어떤 작품으로 회자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들지 않던 실수가 있었다면 그것을 최대한 줄여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그려온 저점과 고점이 주는 의미와 깨달음일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지우고 싶은 순간을 떠올리기보단, 지금이라는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지우고 싶은 순간을 지울 수 있다는 지우개에 대한 생각은, 이젠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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