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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07. 2021

마포대교를 걸으며

그저 어느 대교 위를 걷는 두 다리의 질문엔 그렇게 답이 없다.

나는 간혹 마포대교 위를 걷는다.

퇴근길이다. 전철 또는 버스를 타고 집에 가야 하지만, 걷고 싶은 날엔 한강 위 그 다리를 가로질러 걷는 것이다. 다리 초입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사무실을 나섰다는 이유도 있지만, 탁 트인 풍경과 마주오는 바람이 아주 잠시라도 '자유'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꽃이 막 피어나고 있는 요즘과 같은 계절에 마포대교 위를 걷는다는 건 위로이자 축복이다.


회사를 등지고 걷는 마포대교에서 나는 문득 내 페르소나를 떠올린다.

그리고 다른 가면으로 바꿔 쓸 채비를 한다. '남편'과 '아빠'라는 역할 가면이 그것이다. 그러나, 사무실과 집 사이엔 '퇴근길'이 있기에 그 막간을 이용하여 '작가'라는 가면을 얼른 쓴다. 퇴근길은 오롯이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회사에서는 동료와, 집에서는 가족과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까. 때로 집까지 걸어가는 이유가 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혼자만의 시간을 늘리려는 의도도 있다.


물론, 집에 가서도 글을 쓰는 나를 위해 가족은 모두 적극적인 협조를 해준다.

오롯한 시간을 늘리려는 이유는 바로 영감(靈監)을 위해서다. 두 발로 걷는 단순한 행위는 소란했던 하루를 차분하게 진정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더불어, 내가 쓰고 있는 그리고 써야 하는 페르소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 많은 생각을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면 말 그대로 인사이트가 생겨나는데, 나는 그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휴대폰 앱에 그 느낌들을 빼곡히 적곤 한다.


어쩌면 나는 마포대교 위를 걸으며 나의 페르소나를 정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슈퍼맨이라면 회전문 한 바퀴로 자신의 페르소나를 멋지고 빠르게 바꾸겠지만, 나는 내 페르소나를 바꾸기 위해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내 페르소나는 내가 스스로 쓴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들이 더 많다. 그러니, 평소에 그 가면들은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그게 당연한 것이란 걸 알면서도, 삶이 주는 페르소나는 어찌나 무겁고 적응이 안되는지. 겹겹이 쌓인 페르소나 때문에 숨쉬기 힘들 때도 있다.


그러나 결국, 숨이 막히기에 나는 숨을 쉬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페르소나를 나는 글로 써 내려간다. 그 글은 모여 나의 자부심이 되고, 나의 자부심은 책과 생산물 그리고 영향력이 된다.


'나'는 페르소나의 합이 아니다.

그러나, 페르소나를 빼놓고 '나'를 완전히 설명할 순 없다. 결국, 페르소나를 잘 이해하고 정리하여 그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 우리네 '삶'인 것이다.


도대체 나에겐 몇 개의 페르소나가 있는 걸까?

나는 그중 몇 개의 페르소나에 익숙한가?

당장 벗어던져 버리고 싶은 페르소나는 무엇인가?


마포대교 위는 지나가는 차 소리와 한강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뒤엉켜 아이러니한 적막함이 가득하다.

애써 지어낸 질문들도 그 적막함에 하나 둘 사라지고 만다.


그저 어느 대교 위를 걷는 두 다리의 질문엔 그렇게 답이 없거나 또는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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