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에 책임을 진다는 것

by 스테르담
내 글에 책임을 진다는 것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을 때, 나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낀다.

그 글이 책이 되어 나왔을 땐 더 그렇다. 예전엔, 무형의 글이 유형의 책이 된 신기함과 기쁨에 취해있었는데, 이제는 누군가에게 가 닿을 내 글과 독자분들의 안위를 함께 염려한다.


작가는 독자의 해석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러하기에, 세상에 보내 놓은 내 글의 의미가 잘 전달되고 있는지. 글을 읽은 분들께는 어떤 도움과 가치를 드렸는지. 그저 혼자만의 깨달음으로, 자칫 나하나의 울림으로, 그러니까 찻잔 속의 태풍(은 고사하고 휘저음)과 같은 글이 되지는 않았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묵직해지는 것이다.


그 묵직한 마음은 기어이 '책임'이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에게 진실함과 가치를 전달하려면 내 글은 나를 관통해야 한다. '관통'했다는 것은 내 삶을 가로질러 내어 놓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것엔 거짓이 없어야 하고, 내가 어떠한 의미를 전달했다면 나는 그 의미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한 삶을 살아나갈 때 글쓰기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나는 비로소 내 글에 책임을 질 수 있게 된다.


꾸준한 글쓰기의 선물,
'강화'와 '인지화'


예를 들어, 나는 '글쓰기'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계속 써야 한다. 글 쓰는 기법이나 노하우를 풀어내어 놓고는 글쓰기를 멈추면 안 된다. 글쓰기를 멈춘다면 내 글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내 글에 책임을 지고 꾸준히 실천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재밌는 건, 내가 쓴 글에서 책임감을 떠올리게 되니 나는 또다시 쓸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에는 '강화'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행동에 강화가 뒤따르면, 그 행동이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자극' 여부에 따라 자극이 주어지는 '정적'과 자극이 제거되는 '부적'이 조합된다.


나는 글쓰기를 '정적 강화'의 개념으로 접근한다.

내 마음 또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받아 글을 쓰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 위안을 얻거나 다른 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전했다는 만족감에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이다.


말 그대로 쓸수록 글쓰기의 습관이 '강화'되는 것이다.


글쓰기의 위안과 그 기쁨을 맛본 분들이라면 이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돈을 주지 않아도,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해서 쓰는 원동력이다. 물론, 그 글이 책이 되고 돈이 되고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력으로 다가가 인정을 받게 된다면, 그건 더없는 '정적 강화'의 표본이 될 것이다.


글쓰기를 꾸준히 하면 이러한 기회가 더욱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글쓰기가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은 바로 '인지화'다.

'인지화'는 말 그대로 '내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글을 쓰는 순간 나는 '객관화'가 된다. 오늘 내 기분을 글로 나타내거나, 그게 익숙하지 않다면 단어 몇 가지로 표현해보는 것이 좋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내 기분과 감정을 '짜증', '분노', '화남', '배신감' 등으로 내어 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진정에 큰 도움이 된다.


이것을 좀 더 풀어 문장으로, 문단으로 그리고 하나의 글로 완성하다 보면 나는 '나 자신'을 오롯이 '인지'할 수 있다.

세상 그 누가 알아주지 못하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건 결국 '나'다. 오늘 나의 기분과 감정을 통틀어, 내 마음이 어떠한지를 글을 쓰며 알아갈 수 있다.


'강화', '인지화' 그리고 '책임감'을 합치면,
결국 내 실천과 다짐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삶이 바뀐다.

정말이다. 글쓰기를 한 후 삶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아니, '나 자신'이 바뀌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다. 세상과 일상을 달리 보게 되고, 여유와 포용의 태도가 일어난다. 우리는 대개,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라고 후회하고 같은 상황에서 또 같은 반응을 보이고 만다. 그러나, 글쓰기를 통해 그러한 나를 마주하게 되면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횟수가 점점 줄어든다.


글쓰기를 통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망하고, 나 자신의 행동과 반응에 대해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겪은 깨달음과 의미는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 그것이 바로 '가치'가 되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특별한 생산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글을 쓰며 '나'라는 사람을 잘 인지한다.

'나'를 인지한 나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여유를 둘 줄 알게 된다. 즉, 기분이 태도가 되거나 감정이 여과 없이 나를 투과하여 그 날 하루를 망치는 일이 줄어드는 것이다. 더불어, 이것이 연습되면 그것이 강화되어 깨달음과 의미를 글로 써 내려가는 선순환을 맞이할 수 있다. 여기에, 내가 쓴 글에 책임을 지려하는 노력이 가미되면 결국 이것들은 내 '실천'과 '다짐'의 원동력이 된다.


그렇다면 삶은 바뀔 수밖에 없다.

물론, 더 나은 방향으로 말이다. 내가 변했으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으니. 세상이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느냐고 울분을 토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내 목소리를 내기에 부족한 점이 있었구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깨달은 자는 대응할 수 있다. 의미를 곱씹는 자는 미리 준비할 수 있다.




결국, 내 삶을 관통하는 글을 쓰고 그 글에 책임을 다하려 하면.

기대보다 더 큰 깨달음과 의미를 건지게 된다. 이것이 콘텐츠가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로 전달된다. 다른 사람들도 이러한 깨달음과 의미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이타적인 마음으로 글을 쓰면 된다. 그리하면,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는 그 마음이 곧 나에게 더 큰 도움이 된다. 글쓰기가 주는 선물이다. '가장 이기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인 것'이고, '가장 이타적인 것'이 '가장 이기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글쓰기와 깨달음.

깨달음과 글쓰기.

여기에, 내가 쓴 글에 책임을 지려하는 마음.


나는 이 모든 과정을 사랑한다.

이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과 의미는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 꾸준히 글을 쓰는 이유.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 한 분이라도 더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이유.


더불어, 내가 쓴 글에 꾸준히 책임을 지려 하는 이유다.




[글쓰기 강의 + 함께 쓰고 출판하기]

스테르담 글쓰기 클래스(쓰기+출간)


[글쓰기 시작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

탈잉 글쓰기 클래스(VOD)

탈잉 글쓰기 클래스(오프라인/줌라이브)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에듀 캐스트 직장내공 강의 (VOD)


[종합 정보 모음]

스테르담 저서 모음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MBTI 글쓰기 노하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