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이지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능력에 감탄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생경하고도 광범위한 느낌과 개념을 재치 있는 한마디로 만들어내는 게 놀랍다. 능력만 된다면, 원작자를 찾아가 '노벨 신조어상'을 건네고 싶을 정도다.
'스며들다'란 말은 '밖으로부터 배어들다' 또는 '밖으로부터 흘러들다'란 말이다.
뜻에서 알 수 있듯이 밖에 있던, 그러니까 원래 나와는 상관없던 게 나에게 온 것을 뜻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외부로부터 오는 것에 경계를 드러낸다. 그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경계심이 풀렸을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금씩 수용을 하다 그것에 빠져들면, 삶은 이내 허우적거리기 시작한다.
첫눈에 반한 사랑보다, 알게 모르게 옆에 있다 스며들듯 정드는 사랑이 더 무섭다.
하얀 와이셔츠에 묻은 김치 국물이 잘 지워지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제대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작은 입자와 입자 사이로, 삼투압의 힘을 빌어 저 밑까지 손발을 뻗치는 게 바로 스며드는 힘인 것이다.
무언가에 스며들어보거나, 무언가가 내 삶에 스며들어온 경험이 있다면 잘 알 것이다.
그것의 치명적인 매력을 말이다.
글쓰기가 스며드는 삶
살아오면서 나는 수많은 것에 스며들었고, 동시에 수많은 것들이 내 삶에 스며들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의미 있는 스며듦은 바로 '글'이었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아니, 삶을 송두리째 달리 보게 해 준 글쓰기 말이다.
글은 그야말로 내 삶에 스며들었다.
글을 써본 적 없었지만, 쓰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나날이 이어졌다. 누군가 나를 어느 궁지로 몰아, 기어이 글을 쓰게 만든 게 아닐까란 합리적 의심까지 든다. 거부도 했었고, 받아들이지 못한 적도 있지만 어느샌가 나는 결국 글을 쓰고 있었다.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꾸준하지 않아도 써 내려가던 그때. 내 삶엔 글쓰기가 스며든 것이다.
글은 정말로 스며든다.
쓰면 쓸수록 삼투압의 힘은 커지고, 쓰지 않으면 금단현상마저 든다.
그렇다면 나와 당신은.
'글며드는 삶'을 시작한 것이다.
'글며드는 삶'을 사는 방법
재밌는 건, 글을 쓰지 않던 나에게 글이 스며들었다면.
이제는 내가 글에 스며든다. 마치, 내가 좋다고 따라다니던 대상을 이제는 내가 더 좋아하게 되어 매달리는 모양새와 같다.
그래서일까.
'글며드는 삶'에 나는 흠뻑 허우적댄다. 임산부 눈에는 임산부만 보이고, 군인 눈에는 군인만 보이듯이. 나는 일상 곳곳에서 '글'과 관련된 것들이 보인다. 그것은 글을 꾸준히 쓰겠다는 다짐이자 의지, 그리고 끊이지 않는 소재에 대한 갈급함이다.
'글며드는 삶'을 사는 방법은 그래서 의외로 간단하다.
'글'이란 글자를 여기저기에 붙여 보면 된다.
1. 글요일
직장인에게 최고의 날은 '금요일'이다.
금요일은 이틀이라는 휴식을 내포한 즐거움의 단어다. 크리스마스보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더 설레듯이, 일요일 오후보단 주말의 시작 전 금요일이 더 기쁜 것이다. T.G.I.F(Thanks God, It's Friday)란 말이 있는 걸 보면 이것은 만국 공통이다.
그러나, 역시나 시간은 빨리 흐른다.
금요일 저녁부터 시간은 광속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우리를 일요일 밤에 데려다 놓는다.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무거운 몸을 뉘어 월요일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몸보다 무거운 마음은 쉬이 잠들지 못하지만.
글을 쓰고 나서부터는 그 생활패턴이 조금은 달라졌다.
직장에서의 갈등, 문제, 이슈 등이 글의 소재가 되면서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는 기회가 더 많아졌다. 예전엔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무례한 언행을 했다면 기분만 나빴지만, 이제는 그 상황에 대해 글을 쓴다. 내 마음에 일어난 요동은 글의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일이 나에겐 (금요일까진 아니더라도) '글요일'이 되고 있다.
글감을 모으는 날. 그것에 대해 쓰는 날.
나에겐, 금요일 말고도 좋아하는 요일 하나가 더 생긴 것이다.
2. 글럼프/ 글태기
'슬럼프'와 '권태기' 또한 '글'과 궁합이 잘 맞는 단어다.
누구나 슬럼프를 맞이하고, 누구나 권태를 겪는다. 글을 쓴다면 더 그렇다.
그러나 나는 이 둘이 반가울 때가 있다.
'글럼프'는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증거이고, '권태기'는 글감을 모아가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 때다.
과한 자기 합리화이자 이상주의 성향의 과도함에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사실이다.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글럼프'와 '글태기'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일로 힘든 건 죽겠는데, 글쓰기로 힘든 건 의미 있는 고통이란 생각이다. '창작의 고통'이라 표현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글쓰기의 고통보다, 안에 있는 걸 내어 놓지 못하는 괴로움을 더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글럼프'와 '글태기'는 어디 밖으로부터가 아닌, 내 마음속에서 시작된 즐거운 고통이다.
3. 글렉스하다!
글을 쓰기 시작한 때는, '나는 왜 이리 소비적으로 살고 있지?'란 질문과 마주했을 때다.
그래서 무언가를 생산해내고 싶었다. 글쓰기를 배우거나 해본 적 없지만, 당장 내가 생산할 수 있는 게 글이었으므로. 그것이 내 글쓰기의 시작이 된 것이다.
'플렉스'는 소비와 연관되어 있다.
무언가를 자랑하기 위해 크게 소비하거나 지르는 행위를 일컫는 행위. 나는 여기에 '글'이라는 말을 어김없이 갖다 붙인다.
그러면, '글렉스'가 된다.
소비가 아니라 생산이라는 정반대의 개념이 탄생한다. 글을 마구 생산해내는 것. 주체할 수 없어 앉은자리에서 글을 서너 개에서 열댓 개까지도 써내는 날, 나는 '글렉스 해버렸지 뭐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제나 '글렉스'해버리는 삶을 나는 지향한다.
이 밖에도 '글모닝', '글이브닝', '글나잇'등의 표현도 있다.
어느 날 아침 고요함에서 쓰는 글. 퇴근 후 차분한 마음으로 써 내려가는 글. 깊은 밤 감성에 충만하여 내어 놓는 글. 이 모든 게 '글'을 쓰자는 인사가 된다.
'글로모인사이'도 마찬가지다.
'함께 모여 글을 쓰고 출간을 해보면 어떨까?'란 생각의 시작은 현실이 되어 함께 책을 낸 수많은 작가님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