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내 의식의 흐름이자 치유의 과정인 것이다.
글쓰기와 시간
글쓰기는 직선적 시간관을 따른다.
한 자, 한 자가 모여 단어를 만들고 단어는 문장을 이루며 문장은 문단으로 쌓인다. 문단과 문단이 모여 마침내 단락과 전체 글을 이루는데, 이는 시간의 흐름에 비례한다. 내가 글을 써 나가면 써 나갈수록 시간은 흐른다.
그러나 글쓰기는 시간의 불가역적 성질을 거스를 줄 안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글이 완성되는 건 아니고, 썼던 글을 지울 수도 있다. 그리고 남겨진 글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며 읽는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다. 과거에 쓴 글이라도 현재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지금 쓰는 글이 과거의 기억을 왜곡할 수도 있다. 어쩐지 글쓰기 앞에선 시간도 속수무책이란 생각까지 든다.
때문에 나는 가끔 글쓰기를 통해 통쾌함을 느낀다.
만날 시간에 당해만 왔으니, 그것을 거스를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과 의식
글쓰기를 통해 시간을 거스르는 현상은 ‘의식’과 관련이 깊다.
‘의식’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해 인식하는 작용’을 말하는데, 의식을 통해 우리는 시간을 거스른다. 몸은 과거나 미래로 갈 수 없지만, 의식은 비교적 자유롭다.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고 현재를 인식하기도 하는데, 관점에 따라 과거는 달리 해석되고 현재는 다양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힘들어 죽겠던 과거는 돌아보면 아름다울 때가 있고 마냥 빠르게 가던 시간도 현재의 내 상태에 따라 더디다고 느낄 수 있다.
미래도 마찬가지.
‘미래기억’이란 말도 있다. 선명하게 앞날을 그려낼수록 그것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인데, 실제로 우리는 그러한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우리의 ‘다짐’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루고 싶은 것을 써 놓으면,
그것을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실제로, ‘글쓰기’와 ‘책 출간’은 내 오래전 노트에 ‘미래기억’으로 적힌 바람이자 결심들이었다.)
그것이 우연의 일치든 아니든 간에, 시간을 거슬러 미래를 기억하고 확신을 갖는 것 모두에 ‘의식’이 관여하는 것이다. 즉, 의식은 언제 어디로도 흐를 수 있는 것이다.
의식과 글쓰기, 흐르는 것엔 치유 능력이 있다
결국 글은 ‘의식’으로 쓰여진다고 말할 수 있다.
대개는 ‘문장력’이나 ‘어휘’, 그리고 ‘지식’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는 정서가 가득하다. 일견 맞는 말이다.
문장력이나 어휘를 닮고 싶은 작가가 많고, 지식의 풍부함이 넘쳐나 몇 장만 읽어도 내 부족한 머리가 채워지는 듯한 책들도 많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들의 화려한 기술이나 겉모습보단 ‘의식’의 흐름을 본다. 그들의 ‘생각’의 파편들을 따라 조각을 맞추고,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즐기려 노력한다.
나 또한 글을 쓸 때는 문장력이나 어휘 그리고 지식으로 쓴다고 말할 수가 없다.
나에게 부족한 그것들은 소양에 소양을 거듭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나는 내 ‘의식’의 흐름을 따라 글을 쓰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문장이 완성되고, 어휘가 늘며 지식이 활성화되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겉모습보단 내 ‘의식’을 찾고 쫓으려 노력하는데, 그것은 생활 전반적인 곳곳에서 발견된다.
배우고 느끼고, 깨달은 모든 것들이 의식화되고 그것이 글로 남겨지며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다.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표현이 나오는 쾌감도 함께 느낀다. 그러니까 나는 문장과 어휘를 나열하거나 지식 자랑을 하는 게 아니라 내 의식을 흘려보내며, 그것을 써 내려간다고 말할 수 있다.
뭐든, 고여 있으면 좋지 않다.
고이고 고인 의식이나 생각은 흘려 내보내야 좋다. 그래야 새로운 것들이 들어오고, 묵은 것은 빠지며 의식은 순환한다. 흐르는 것엔 치유 능력이 있다. 강이나 바다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정화할 수 있는 건 흐르고, 파도치며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순환 구조를 만드는데 글쓰기는 아주 좋은 도구다.
글을 써 내려갈수록 내 의식이 흐른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막힌 것이 뚫리기도 하고, 모자란 것이 채워지기도 하는 이 느낌은 힘들어 지친 일상에서도 기어코 한 자 한 자를 쓰게 한다.
한마디로 글쓰기는 내 의식의 흐름이자 치유의 과정인 것이다.
『작가의 시작』 바버라 애버크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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