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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03. 2021

시간이 해결해줄 것을 기다리는 자세

시간은 감정과 연계되어 있다.

There are two cardinal sins from which all others spring: Impatience and Laziness
모든 죄악의 근원이 되는, 가장 큰 죄악의 두 가지는 조급함과 나태함이다.

- 프란츠 카프카 -


시간을 상대로 우리가 패배하는 이유는 대개 '조급함'과 '나태함'때문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치명적이냐고 묻는 다면 나는 주저함 없이 '조급함'을 들이댄다. 나태함이 그르치는 것보다, 조급함이 그르치는 것들을 더 많이 봐왔고 더 여실히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조급함은 마치 그림자를 앞서가려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다.

말 한마디 해보지 않고 외국어를 마스터하려는 마음이나, 글 하나 써놓지 않고 책을 내려는 심보와 다름없다.


조급함과 관련된 우리 속담 중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란 말이 있다.

떡이나 고구마와 같은 뻑뻑한 음식을 먹고 동치미 국물을 먹었던 우리네 생활습관에서 나온 표현이다. 이 속담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정말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떡을 먹고 김칫국을 마셔야 하는데, 중요한 단계를 뛰어넘어 그다음의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 자체가 말 그대로 코미디다.


그러나, 이러한 코미디가 우리 생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게 더 코미디라는 사실.

그 코미디를 만들어내고 연출하는 건, 다름 아닌 우리네의 '조급함'이다.


'머리'와 '마음'의 속도는 다르다.


상대성 이론은 양자역학과 함께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이라 일컬어진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쉽게 설명해 달라는 요청이 있자, "미인과 함께 있으면 1시간이 1분처럼 느껴지지만 뜨거운 난로 위에서는 1분이 1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이처럼, 머리와 마음의 속도는 여실히 다르다.

우리는 보통 '머리', 그러니까 '이성'으로 무언가를 계획한다. 그러나 그 계획을 그르치는 건 언제나 '마음'이다. '조급함'이란 단어는 머리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일종의 '감정'이다. 우리네 사람에게 의사결정 능력은 감정이라는 것에 있다는 것을 상기할 때, 마음은 머리의 시간을 압도하고 지배한다.


조급한 마음이 생기면 우리는 계획조차 하지 않는다.

10시간이라는 물리적 시간이 있어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10분의 산책도 하지 못하지만, 마음이 동한 사람은 30분이라는 촉박한 상황에서도 시간을 쪼개어 기어이 산책을 한다.


머리와 마음의 속도 그리고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인정해야 한다.

물리적인 몸은 그림자를 앞설 수 없지만, 마음은 그림자를 이미 앞서고도 남는다.


조급함이라는 감정, 마음의 속도를 계속해서 살펴야 하는 이유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을 기다리는 자세


갑작스러운 해외 발령으로 인해 스페인어를 공부해야 할 때가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두 달이었다. 나는 스페인어를 공부해본 적이 전혀 없다. 고등학교 때 배운 제2 외국어는 일본어였고, 영어 외에 또 다른 언어를 습득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공부를 시작함과 동시에 조급함이 몰려왔다.

그렇다고 조급함에 비례하는 만큼의 양을 공부한 것도 아니다. 마음만 그림자를 앞서 나가 있었을 뿐. 나는 동요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것이다.


현지에서 나는 물론 처참함을 느꼈다.

두 달 동안 공부한 스페인어는 당장 쓸모가 없었다. 들리지도 않고 말할 수도 없었다. 나 자신이 미웠고 한심했다.


그러나, 과연 그 두 달 동안 스페인어를 조금 더 열심히 했다면 나는 현지에서 좀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었을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순 있겠으나, 기대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낼 순 없었을 거라 믿는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배경음악이 깔린 도서관 타임랩스 장면으로 천재적인 언어 실력이 있다는 설정이 아니라면, 현실에선 단숨에 언어를 습득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어렵다.


때론, 시간이 해결해줄 일들이 분명 있다.


모든 걸 포기하고 무기력하게 기다리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음의 시간과 그 속도를 조금 늦춰 현실을 파악하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갖자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자책감과 자괴감은 줄어들었고 점점 나아지는 언어 실력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들리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대로, 말하지 못하면 말하지 못하는 대로. 내 부족함을 탓하는 게 아니라, 그 결핍과 결여를 알아차려 내가 공부하고 연습해야 할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내게 있어 아주 큰 삶의 변화였다.




시간은 감정과 연계되어 있다.

마음의 시계는 그 메커니즘이 다르다. 그것은 우리가 머리로 알고 있는 시계와 시간의 속성을 가뿐히 무시한다. 물리적인 시간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는 마음의 시간과 그 속도를 우리는 잡아채야 한다.


시간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시간 앞에 우리는 좀 더 현명해질 수 있다. 시간이 해야 할 일을 우리가 대신할 필요가 없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어차피 우리는 시간과 싸워 이길 수 없다.

그런 상대를 두고 굳이 힘을 뺄 필요가 있을까?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건, 우리에게 있어 어쩌면 선물이자 축복이다.

조급한 마음만 잠시 접어두면 된다. 조급하면 조급해할수록 나 자신만 망가질 뿐이다.


그래서 나는 조급한 마음이 들 때면,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말을 떠올린다.

홈런이라는 삶의 축복도 과정을 뛰어넘는 조급함을 잘 다스려야 취할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삶의 진리를 떠올리며.


홈런을 쳐도 베이스를 차례로 밟아야 한다.
홈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1루, 2루, 3루 베이스를 차례로 밟지 않으면 안 된다.

- 베이브 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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