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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11. 2021

완벽이라는 해충, 대충이라는 익충

무엇이 익충이고, 무엇이 해충인지는 실천 후에판가름할일이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벌레는 '대충'입니다.


한 연예인이 TV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열정을 이와 같이 내비쳤다.

이밖에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금 3개는 '황금'과 '소금' 그리고 '지금'이라고 말하며 모든 패널이 손을 들어 박수를 치게 했다.


그의 말은 삽시간에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되었다.

'대충'은 이미 '해충'이라는 벌레가 되었다. 나 또한 스스로를 돌아보아 혹시라도 일상에서 해충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하곤 한다.


그러나 어떤 명제를 받아들일 때는 사색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색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깊은 생각의 과정이다. 이는 내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필터이기도 하다. 때론 필터 없이 있는 그대로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 생존이라는 삶의 목적성을 보면 무언가를 1차적으로 걸러내는 장치는 꼭 필요하다. 예를 들어, 먹음직스러운 버섯을 따 입으로 가져가는 건 매우 위험하다. '독을 품고 있을수록 아름답다'는 사색의 필터를 장착하면 그 위험을 줄일 수 있게 된다. 반대로 몸에 좋은 건 쓰고, 그리 예뻐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떠올리면 생존의 확률은 커질 수 있다.


그러니까 '대충은 해충'이란 말은 곱씹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사색을 통해 내게 맞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은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어떠한 명제도 절대적이진 않기 때문이다. 그땐 맞았던 게 지금은 틀릴 수 있고, 그때 틀렸던 것이 지금엔 맞는 것일 수도 있다.


명제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요동한다.


그렇다면 완벽은 '익충'일까?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그렇다면 완벽은 '익충'일까?

우리는 모든 부분에서 완벽해야 할까?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아니, 완벽할 수가 없다. 우리가 말하는 완벽의 정도는 그 의미보다도 세다. 원래 사람들은 없는 것을 더 드높이고, 가지지 못하는 것을 더 포장하는 법이다.


'익충'은 말 그대로 도움이 되는 벌레를 말한다.

예를 들어 모기를 잡는 거미는 익충일까 해충일까? 우리가 해충이라 여기는 파리나 모기를 잡는 천연 방충망의 역할을 한다고 보면 거미는 익충이다. 그러나, 거미의 존재 자체에 공포를 느끼거나 어지럽게 쳐진 거미줄을 본다면 익충이라 말할 수 없다. 즉, '해충'인지 '익충'인지는 지극히 주관적인 개념이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지, 그러하지 않은지에 따라 의미는 변하고 또 변한다.


완벽함을 추구하다 결국 시작도 못하는 경우.

완벽이 결벽이 되어 그 이상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

자신은 완벽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완벽함을 강요하는 경우.


이러한 때 '익충'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해충'이 되고 만다.


완벽이라는 해충,
대충이라는 익충


그렇다면 '완벽'과 '대충'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좋고 나쁜 건 누가 정하는가? 다름 아닌 나다. 내가 아무리 익충이라고 해도 다른 이는 경악할 수 있고, 남이 해충이라고 해도 나에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완벽은 무조건 익충인가?

대충은 무조건 해충인가?


'완벽'과 '대충'은 '익충'일 수도, '해충'일 수도 있다.

아니, 그 둘은 '벌레 충'이란 말을 붙일 성격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완벽'과 '대충'은 둘 다 지향해야 하며, 동시에 둘 다 지양해야 한다.

때와 상황이 있다고 보는 게 더 이해가 쉽겠다.


완벽의 강박으로 시작하지 못할 때, 우리는 대충이 필요하다.

대충으로 채워지지 않는 단계에서는 완벽을 추구해야 한다.


중요한 건,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완벽'은 무결점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마음'이고, '대충'은 무성의가 아니라 '부족하더라도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다. 


'무결점'과 '무성의'는 어느 한쪽으로 쏠린 마음이다. 

또는 '명제'를 자멸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반면 '나아가는 마음과 자세'는 균형을 잡기 위한 움직임이다. 끝이 아닌 과정. 맞고 틀리고를 속단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받아들이고 곱씹는 사색의 시간인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벌레를 싫어한다.

애완용으로 키우는 사람도 있으나, 태초와 원시시대부터 각인되어 온 거부감은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생존에 의한 것이니 그것은 사람의 본능인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벌레도 마찬가지다.

벌레도 사람을 싫어한다. 그래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물고 침을 쏘는 것이다. 자신들을 키워주는 인간은 익충일 것이고, 자신들에 경악하는 인간은 그네들에게 해충일 것이다.


'완벽'과 '대충' 그 둘 모두 우리는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결론 내릴 수 없다.

그보다는 시야를 '나'로 거둬들여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완벽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좀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다. 안일한 무성의함을 합리화하는데에서 벗어나 바로 시작하고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무엇이 해충이고, 무엇이 익충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채는 것이다.


의심해야 한다.

사색해야 한다.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실천해야 한다.


무엇이 익충이고, 무엇이 해충인지는 그다음에 판가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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