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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10. 2021

직장의 괴물들

어떠한 괴물이 되어야 하는가?

괴물의 공통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을 우연찮게 여러 번 보게 되었다.

처음 그 영화를 봤을 땐, 흑백 논리에 따라 사람을 '선' 그리고 괴물을 '악'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몇 번을 거듭하여 보니 관점이 조금씩 바뀌었다. 블랙코미디와도 같은 사람들과 사회의 부조리, 괴물 또한 저가 괴물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었음을 상기할 때 과연 누가 괴물이고 누가 사람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짐작을 미루어할 수 있다.

첫째, 괴물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

둘째,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


수많은 괴물 영화들의 공통점도 이를 잘 말해준다.

괴물들은 대개 외계에서 날아오거나, 아니면 지구 상에서 인간의 실수나 과오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어디에서 생겨났든 간에 그 괴물들은 공통점을 갖게 되는데, 그건 바로 '생존'이다. 괴물들이 득세하는 이유는 지구를 자신들의 은신처로 삼으려 하거나, 인간을 종족 번식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약속이나 한 듯 모든 괴물 영화의 스토리는 이를 근간으로 한다. 살아남기 위해, 종족을 번식하기 위해.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니, 정말 똑같다.


'생존'이란 키워드를 상기하면, 위에 언급한 두 가지 명제가 더욱더 공고해진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충분히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괴물을 양산해내는 곳, 직장!


'직장'은 생존을 위한 곳이다.

월급을 받아야 살 수 있으니 그 누구라도 이것을 부인할 수 없다. 월급을 받으려면 경쟁해야 한다. '경쟁'의 사전적 의미는 '같은 목적에 대하여 서로 이기거나 앞서려고 다툼' 또는 '생물의 여러 개체가 제한된 환경을 이용하기 위하여 벌이는 상호 작용'이다. 

산 위에 깃발이 하나 있다. 이 깃발을 먼저 잡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것이 '경쟁'의 기본적인 형태다. 다만 깃발이 몇 개 더 있을 뿐, 그 깃발을 잡거나 가진 깃발을 놓치지 않게 고군분투해야 하는 곳이 바로 직장이다.


그러다 보니 직장은 많은 괴물을 양산해낸다.

살아남으로 발버둥 치는 와중에 저 자신도 모르게 괴물로 변해가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볼 때 모두 형, 누나와 같은 좋은 사람이 있다고 한들. 그들을 위해 내 승진과 퇴사를 양보할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직장은 알고 보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내 밥그릇과 다른 이의 밥그릇이 부딪치는 살벌한 공간이다.


그러니, 어찌 보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괴물이 되어야 한다.

'생존' 앞엔 우아함이 없다. 우아해 보이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은 허덕여야 한다. 물 위 오리가 우아해 보이는 이유는, 물속에서 발을 우아하지 않게 허우적대고 있기 때문이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선배 한 명이 있었다.

그러나 그 선배가 승승장구하게 되면서, 나는 그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똑똑히 봤다. 짊어져야 하는 책임과 주변의 기대가 커지면서 성격은 난폭해졌고 선배로부터 닮고 싶었던 평정심은 온데 간데없게 되었다. 술이라도 마시면 그동안 없었던 주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그 선배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 같지만 무엇을 위한 불타오름인지 모르고, 강렬한 것 같지만 저 자신마저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동공. 


팀원이나 주위 사람들은 그 눈매를 보고 무서워했지만, 나는 그 눈빛에서 더 큰 괴물이 되기 전에 어서 나를 구해달라는 선배의 내적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괴물이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사실, 그 선배의 눈빛을 보고 무서웠던 건 선배가 아니라 나를 돌아봐야 하는 그 자체였다.

나도 이미 괴물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찌어찌 생존하여 왔고, 신입사원 때부터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오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적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적들은 나를 괴물로 규정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

팀장 욕을 그렇게 하던 사람들도, 팀장이 되면 똑같이 행동한다. 아니, 더 심하게 더 악랄하고 악독하게 변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까지 내가 괴물이라 규정했던 사람들의 입장이 되면, 나도 그와 같은 또는 그를 능가하는 괴물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물론, 내가 불합리하다 생각했던 것들을 고치려는 노력을 한 적은 있다.

그러한 노력을 멈추고 싶진 않다. 그러나 그 또한 한낱 '괴물의 고민'일뿐. 세상을 뒤집을 슈퍼히어로가 될 자신은 없다.


내가 좀 더 신경 써야 할 것은, 괴물이 되더라도 어떤 괴물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어떤 괴물이 될 것인가?


'괴물'이란 뜻을 찾아보면 참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괴물
1. 괴상하게 생긴 물체
2. 괴상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특정 분야의 일에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어학사전 -


아마 이 글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괴물'이란 단어를 거북하게 또는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왔을 것이다.

그러다 떠오르는 또 하나의 뜻. "저 친구는 엑셀 괴물이야!", "내가 아는 그 사람은 운동에 있어서는 괴물이야, 괴물!". 이처럼 무언가에 뛰어난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뜻 말이다.


생존하려 쏟아붓는 에너지는 그 어느 것보다 크다.

그러니 에너지를 쏟아 생존해내었다면, 그 에너지는 내 역량의 다른 말이 될 것이다. 괴물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무섭고 유해한 존재가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 뛰어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괴물'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을 때, 마치 그것은 객관식 시험문제와 같이 느껴졌다.


문제) 다음 세 가지 중 당신이 되고 싶은 괴물은 어떤 것인가요? 세 가지 중에 고르세요.





'직장의 괴물'이란 말을 들었을 때, '그래 맞아 그 사람은 정말 나쁜 괴물이야'라며 누군가를 떠올렸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 글을 보며 맥락을 파악했겠지만, '괴물'은 누군가를 지칭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직장인은 누구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고, 그러하므로 누구나 괴물이라는 명제 하에.

그렇다면 나는 어떤 괴물이고, 또 어떠한 괴물이 되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자는 게 이 글의 취지다.


어디에나 괴물은 있다.

만약, 내가 있는 곳에 괴물이 없는 것 같다면? 내가 괴물이라는 걸 명심하는 게 좋다.


어학사전에서 제시한 세 가지 괴물 중 어떠한 괴물이 될지, 여러분의 선택이 궁금하다.

우리는 물체가 될 수 없으니, 답은 좀 더 명료해진다.


둘 중 하나다.


어떤 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

때로는 답이 하나가 아닐 수도 있고.


원래, 직장생활엔 정답은 없다.

다만, 오답은 내어 놓지 않길 나는 바란다.


오답을 자주 내어 놓을수록, 내가 원하지 않는 괴물로 변해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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