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 있는 메일이 어느새 사라지고, 하루 끝에 해야 할 일이 없는 날이 있다. 정말 간혹이다. 일찍 퇴근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나 스스로도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는 그 순간.
오묘한 감정이 피어오르곤 한다.
질주하던 기차가 속도를 내지 않는 모양새로 주저하고 있는 것과 같을까. 앞만 보고 달리던 관성이 멈추지 않았는지, 마음은 편하지 않고 오히려 불안하다.
이러한 불안감은 어디에서 오고, 그 실체는 무엇일까?
저녁 있는 삶이 조금씩 보장되고 있는 시대이지만, 아직 나에게 저녁은 낯선 무엇일는지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저녁'은 단지 시간만을 뜻하지 않는다. 예전에 늦게 퇴근하느라 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의미 있게 해내어야 그것은 '시간' 이상이 될 것이다.
결국,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지 못할까 봐 나는 불안해하는 것이다.
오묘한 감정은 그래서 불안을 야기한다.
강박은 가지지 않아도 될 때 떠오르는 아주 약 오른 감정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만들어내는 고약한 사슬이다. 물론, 나를 키운 건 어쩌면 8할이 강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머지 2할을 강박 없이 마음 편히 무언가를 했다고도 할 수 없다. 결국, 강박은 내 전체를 사로잡는다.
아마도 이것은 내 운명이 아닐까 싶다.
아니, 어쩌면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일지도 모른다. 무엇으로 인해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집단 무의식의 영향이라고 결론 내어도 반박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강박을 느끼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로 삶은 시급하게 돌아가니까.
나는 이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글을 쓴다.
글쓰기는 의미를 다루는 행위 이므로, 이것은 내게 강박을 잠재우는 아주 좋은 시간이자 활동이다. 물론,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도 있으나 내게 주어진 시간에 글을 쓴다는 건 어느 정도의 불안을 해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