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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03. 2022

아내를 부르는 호칭들

나는 무엇으로 불리고 있는지를 돌아본다.

한 사내와 한 여자가 인연이 되었다.

그 누구도 연애의 끝은 알지 못하지만, 결국 '결혼'이란 것으로 일종의 종지부를 찍는다. 그러나 그 종지부는 마침표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다. 끝은 시작을 위한 것이 아닌가. 끝이 있으니 새로운 시작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연애'라고 달리 말해도 좋다.

또 다른 연애의 시작. 그것이 바로 결혼이다.


시작은 새로움을 동반한다.

내겐 호칭이 그렇다. 그러나 그전에. 호칭은 왜 바뀌거나 추가되는가.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역할의 변화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났을 때. 그들의 역할은 뜨거운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내와 남편,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되는 과정을 거치며 각자의 역할은 우후죽순 늘어난다.


더불어, 그 역할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무겁고 묵직한 역할과 책임 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저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 간다. 그 과정에서 온전한 어른으로 거듭나지 못하는 이들은 수많은 갈등을 서로 겪는다. 이것은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여정은 돌아보니 다시 하라면 하지 못할 무엇이었다. 그러나 물론, 보람과 기쁨을 동반한 소중한 경험. 오늘 이 순간 이후부터도 쉽지 않은 것들이 닥쳐올 테지만, 그러하므로 나는 더 마음을 굳게 다져 본다.


나는 평소 아내 이름을 부른다.

'자기'나 '여보' 등은 내 입에 붙질 않는다. 가끔 다른 부부나 커플들이 놀라기도 한다. 여전히 이름을 부르냐면서 말이다. 나는 이게 낯선 것인지를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나는 아내 이름을 부르는 게 좋다. 음절과 음절이 이어지는 이름의 발음 속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친숙한 무엇이 있다. 나는 그래서 아내의 이름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또 하나 내가 아내를 부르는 호칭이 있다.

'엄마'다. 아이들의 엄마란 뜻도 있지만, 나는 나를 돌보는 이로써의 바람을 담아 아내를 '엄마'로 부른다. 그렇게 부르면 내 마음이 평온하다. 이 세상에 내가 그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그 품에 안겨 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아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란 말은 바다와 같고 우주와 다르지 않다. 내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생각으로 아내를 '엄마'로 부르면, 나는 어느새 큰 위로를 얻는다. (특히, 내가 찾지 못하는 걸 찾아 달라고 할 때, 나는 '엄마'를 연신 외친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아내 눈엔 어찌 그리 잘 보이는 건지.)


아내의 이름을 부를 때와, 다른 호칭으로 부를 때.

내 마음엔 큰 변화가 없다. 다만, 달라진 호칭에 나와 아내의 역할을 되돌아본다.


역할의 변화.

호칭의 변화.


만남과 연애.

결혼과 그 끝이 아닌 또 다른 연애의 시작.


다시금, 나는 무엇으로 불리고 있는지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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