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May 27. 2022

내 가벼움을 마주하는 불편함

먼지보다 가벼운 자의 돌덩이보다 묵직한 깨달음

가벼운 것은 안정적이지 않다.

그러나 나는 안정을 원한다. 가볍지 아니함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나는 가볍다.

무겁기보다는 묵직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묵직하다는 건 중심이 잡혔단 말이다. 중심이 잡혔다는 건 안정적이란 말이며, 가볍게 흩날리지 않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내 중심을 잡고 우뚝 서 있는 존재의 아우라란 얼마나 멋진 것인가.

그러나 오늘도 팔랑이는 삶을 사는 나는, 회의하고 또 회의한다.


특히나, 직장에서 마주하는 내 가벼움은 상당히 불편하다.

상사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수치를 기억하지 못해 평가절하 당하고,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그 모습은 묵직하지가 않다. 때로는 순간을 벗어나려 거짓말하고, 그것이 들통날까 후회하며 뒤늦게 수습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스스로 기가 차기도 한다.


아, 나는 이리도 가벼운 존재였던 것인가?


내 존재의 무게를 쏙 빼버리는 삶의 농간은 유쾌하지 않다.

아니, 불쾌 그 자체다.


대체 내 중심은 어디에 있는 걸까.

자신감이 차오를 땐 내 중심에 대한 확신이 있다가도, 한 번이라도 삶에 내동댕이 쳐지고 난 뒤엔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못된 습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있다가도 없는 것.

없다가도 있는 것.

과연 그것을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이내 무거움을 긍정으로, 가벼움을 부정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바뀌지 않는 중심은 아집으로 고착될 수 있으며, 가볍지 아니한 언행은 누군가에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안겨다 줄 수도 있다. 삶이라는 농간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묵직하기만 해선 안되고, 가볍기만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즉, 묵직함과 가벼움을 오가야 삶이라는 파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내 가벼움을 마주하는 데에는 좀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 한다거나, 내 약점을 후벼 파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꼬리를 내릴 필요가 있다. 소나기는 피하고 봐야 하듯, 어느 한순간을 거짓말을 해서라도 모면해야 하는 때가 있다.


과하지욕(胯下之辱).

건달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가는 굴욕을 참은 한신의 이야기는 가벼움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가벼움이 주는 메시지는 세상 그 무엇보다 묵직하다.


"한순간의 분노를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


돌아보니 내 가벼움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것이었고, 가벼움이 모여 묵직함이 됨을 나는 깨달았다.

더불어, 묵직하기만 할 때의 가벼움은 삶의 색다른 면을 보게 해 준다.


즉, 가벼움은 묵직함으로 가는 과정이며 묵직함은 가벼움을 마주할 줄 아는 자가 지닐 수 있는 덕목인 것이다.


내 가벼움을 마주하는 것은 여전히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한 마음에 매몰되기보단,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에 익숙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는 묵직함으로 가는 여정이자 훈련이며, 그것 없이는 묵직함과 중심은 있을 수 없다.


원래 인생은 불편한 마음으로 굴러가는 것이다.

불편한 마음이 기어이 나를 일으키고, 불편한 마음으로부터 나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것이 먼지보다 가벼운 자의 돌덩이보다 묵직한 깨달음이다.




[브런치 x 와디즈 수상] 인문학 글쓰기 & 출간 펀딩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지옥은 조급함 안에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