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에 대한 단상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더 큰 갈등이 생겨나지 않도록.

by 스테르담

우리는 앞서 '세대라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것에 어떠한 영향을 받고 있는 걸까요?


이것부터 규명해야 우리는 '세대'라는 말 앞에서 갈등을 양산하는 성급한 오류를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이데올로기'

개인이나 사회 집단의 사상, 행동 따위를 이끄는 관념이나 신념의 체계 - 어학 사전 -


사람은 '범주화'와 '개념'의 노예입니다.


아래 예를 볼까요?

"그거 뭐더라, 가족들이 함께 하는 공간... 그거 있잖아."
"아, '집' 말하는 거야?"


이처럼 '집'은 개념화된 명칭입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집'의 전체 의미를 담아내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집을 거주 수단으로 떠올리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아파트나 단독 주택과 같은 형태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누군가는 화목한 가정을 생각해내고, 다른 이는 매매 또는 부의 상징으로 집을 인지할 수도 있습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다양한 이미지에서 최대공약수를 뽑아내야만 우리는 소통할 수 있기에, '집'은 결국 '이름을 붙여 만든 어떤 개념'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이처럼 이름이 붙인 개념은 기준 즉, 이데올로기가 됩니다.

더불어, 그 이데올로기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사회적 압력이 됩니다.


집이 있느냐, 없느냐.

아파트냐, 빌라냐.

강남에 집이 있는 것 보니 부자구나.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성인이 된 어느 즈음에 사랑하는 사람과 법적으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회적 합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 이제 기준은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압력은 발동하게 됩니다.


결혼을 했느냐 안 했느냐.

결혼할 때가 되었지 않느냐.

이혼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세대'란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세대'라는 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미 그것은 어떠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사실, 본래 태생이 '범주화'와 '개념의 성립'이란 차원에서 신세대를 나누는 이름이 나왔을 때 이미 '기준'은 동시에 성립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부러 '기준'을 만들어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세대'는 '나'와 '남'을 구분하는 아주 손쉬운 도구입니다.

또는 너와 나를 합쳐 '우리'로 만들고, 타인(들)을 '쟤네들'이라고 한데 뭉쳐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나' vs. '너'
'우리' vs. '쟤네들'


이 얼마나 효율적이고도 쉬운 구분일까요?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조금이라도 이상하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세대차이'란 말을 떠올리고, 이내 '이데올로기'에 휘둘리고 맙니다.


그러나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러한 '범주화'를 하고 '개념화'를 했기 때문에 세대 분석을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기조가 생겼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그에 대한 어떠한 이유를 찾지 못할 때 괴로워하기 때문입니다. 이해할 수 있는 신세대의 행동을 보고 그 이유를 찾아내야만 비로소 일상생활이 가능해지므로 이데올로기가 나쁘다고만 볼 순 없는 겁니다.


저 조차도, 신 세대들을 보며 무언가를 이해할 수 없을 때 세대에 대한 리포트를 찾거나 뉴스를 찾아보고 이해를 합니다.

그러면 좀 더 이해하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고찰은 이래서 중요합니다.

'개념'은 고정된 듯 하지만 유동적입니다. 내가 얼마나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는 가에 따라 그것은 확장되거나 다시 성립이 됩니다. 그러니까, 개념이 고정되었다고 생각하면 그것에 휘둘릴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질문을 던지면 그 본질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개념을 재정립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순간입니다.


'세대'라는 이데올로기에
휘둘리게 된다면?


이러한 고찰 없이 '세대'라는 이데올로기에 그저 휘둘리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첫째, 다양성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제가 가장 무서워하고 경계하는 사람은 바로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일상에서 말할 때, '사과와 배는 틀리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저 단 한 문장으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경계심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보통,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어떠한가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다름'을 그저 '다름'으로 받아들이실 마음의 준비가 되셨나요? 그러한 관용과 이해심을 가지고 있나요?


그렇다면 박수를, 아니라면 내가 '다름'과 '틀림'을 제대로 구분하고 있는지를 돌이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둘째, 귀인 편향에 빠지게 됩니다.


'귀인(attribution theory) 오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나 타인의 행동, 대화 등의 원인을 찾아내 특정한 것으로 귀속시키는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귀인 이론엔 '외적 요인'과 '내적 요인'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연인과 데이트를 망친 걸 날씨 탓으로 돌리거나(외적 요인), '나는 연애 세포가 부족하다'(내적 요인)고 결론짓는 겁니다. 물론, 이러한 원인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류'라는 말은 내가 연애 세포가 부족해 일어난 일인데, 날씨를 탓하는 걸 말합니다.


이것이 심해지면 '귀인 편향'에 빠집니다.

모든 일의 원인을 밖에서만 찾는 다든가,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결론짓는 겁니다. 말 그대로 원인 규명을 어느 한쪽으로만 쏠리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세대'는 아주 훌륭한 '귀인 편향'의 에너지입니다.

이상하고, 이해 안 되고, 다르거나 틀린 것에 대해 그것들이 모두 '세대'라고 결론지으면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셋째, 편견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다양성을 모르고, 귀인 편향에 빠진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자신만의 세상에 갇히게 됩니다. 그 세상이 광대하고 원활한 우주와 같다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 세상이 '편견'이라는 울타리에 한정된 것이라면 그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편견'이란 말은 '한쪽으로 치우친 공정하지 못한 생각이나 견해'를 말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세상과 우주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주위 사람은 그 모든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나만이 치우친 내 세상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넓은 세계관을 가진 이유로 나와 함께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회사의 '위계' 때문에 나를 따르는 것인지를 객관적으로 봐야 합니다.


내가 가진 편견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이데올로기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세대'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게 먼저 떠올려지나요?


지금까지 나는 기울어진 내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니었나요?

모든 이유를 '세대' 탓으로 결론지어 오진 않았나요?


사람은 개념을 만들고, 개념은 사람을 그의 노예로 만듭니다.

영국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생각의 감옥'이라고 말했습니다.


개념이라는 언어에 우리 모두가 갇혀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시점입니다.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더 큰 갈등이 생겨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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