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인류의 오묘한 습관이다.
달리 말하면 인류는 사서 고생하는 유일한 '종'이라 할 수 있다.
여행은 효율성 측면에서 그리 좋지 않은 활동이다.
'Travel'이란 어원 자체가 '노동', '고통'이라는 것을 돌이켜보면 몸은 축나기 마련이고, 비용은 어마어마하며, 오고 가는 여정에서 감수해야 하는 위험들은 상존한다. 게다가, 여행 후의 여독을 생각하면 굳이 왜 떠났던가를 자문하게 되기도 한다.
집 떠나면 이토록 고생인데, 우리는 왜 여행을 하는 것일까?
유럽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할 때였다.
내가 바라본 유럽인들의 마음가짐은, 여행을 가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미 연초, 아니 전년부터 그 해의 여행 계획을 수립하고 이미 예약까지 마무리해 놓는 게 다반사였다.
'농담 반, 진담 반'이라는 표현은 어느 한 민족의 성향을 나타낼 수 있는 실체인데, 다양한 국가의 유럽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웃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들은 여행을 위해 일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일'이 우선인 우리네의 정서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진담'의 색이 더 강했던 기억이 난다. 이는, 우리네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변화다. 일이나 삶의 속박으로 인해 여행을 미루는 일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으니까.
'효율'에 대해 말할 때, 그것에 거스르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효용'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비효율적인 게 바로 '여행'이지만, 무언가 남는 게 있으니 우리는 기어이 짐을 싸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남는 것일까?
무엇보다 '추억'을 그 이유로 말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혼자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떠난 여행은 고단함마저 즐거움으로 승화할 수 있다. 그 즐거움은 훗날 일상에서의 힘든 일 정도는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함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여행 후 일상에서 얻을 상처들을 위한 일종의 보험이라고 해도 좋다.
'경험'이란 것도 한 몫한다.
가보지 않은 곳, 해보지 않은 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라면 이 모든 건 '경험'이란 말로 함축된다. 경험은 모든 상황을 아우른다. 좋았던 것도, 나빴던 것도 모두 경험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여행의 과정과 그 결과가 어쨌든, 떠나는 그 순간 아니 그전부터 여행은 시작되며 그 모든 시작과 끝은 경험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경험은 돈의 액수를 무색하게 하는 힘이 있다. 좋았다면 얼마든 퉁칠 수 있는 게 바로 '경험'이란 말 아닌가.
사실, 여행의 가장 큰 묘미는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무언가 숨이 막혀 떠나고 싶은 곳이었는데, 다시금 그곳으로 돌아오고 싶은 아이러니. 이러니, 여행은 가장 비효율적인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돌아올 곳이 없다면 그것은 '여행'이란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돌아올 곳이 없다면 그것은 '이사'이거나 '방황'이라 말하는 게 더 맞다.
돌아올 곳이 있으니, 여행을 간 그곳의 생활은 그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기차를 타고 스위스의 절경을 보면 처음엔 감탄과 함께 사진기를 들이대지만, 고작 몇십 분이 지나면 그 감동은 사라지고 어느새 그림과 같은 풍경은 당연한 것들이 된다.
반 고흐 박물관이 마음만 먹으면 30분 안에 갈 수 있는 곳이 되면 정작 그곳을 방문하는 곳의 횟수는 현저히 떨어지고, 프랑스 니스에 오래 머무르면 일주일이 넘어가는 시점엔 무엇을 할지 몰라 어영부영하게 된다. 깐쿤에서, 뉴욕에서. 다양하고 멋진 나라와 도시에서 그 법칙은 모두 적용되었다. 이틀 정도만 지나면, 주변의 것들은 고만고만한 것들이 되고 만다.
참된 여행은 새로운 장소에 도달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움이 아니라, 익숙함을 달리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행의 이유를 묻는 다면.
새로운 것을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하던 걸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을 갖기 위함이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지금의 나에게, 이보다 더 명확한 이유는 없다.
이 명확함을 깨닫게 된다면, 어디 멀리 가지 않아도 나는 언제든 여행할 수가 있다.
평범한 것을 평범하게 생각하지 않고, 특별하지 않은 것을 특별하게 대하다 보면.
이미 여행은 시작되는 것이니까.
여행은 언제나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여행의 이유를 묻는다면 묻고 또 묻는 만큼 그 비효율은 효용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더불어,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묻는 그 순간.
나에게로의 여행은, 마치 미지의 우주를 유영하는 것보다 더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그 어떤 액수를 제시해도 맞바꿀 수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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