갔던 곳을 가면 여행이 아닐까

눈 뜨자마자 여행이 시작되는 이유

by 스테르담

직업 특성상, 해외 출장이 잦고 주재원 근무를 하다 보니 해외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다.

그런데, 잦은 출장과 현지 그리고 본사의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내가 해외에 있는 것인지조차 혼란스럽다. 나와 다른 말을 하거나, 같지 않은 인종의 사람이 옆에 있어도, 처음 보는 거리라 하더라도 내 눈길과 마음을 끌거나 사로잡진 못한다.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을뿐더러, 그곳에서의 생활 자체가 나에겐 빠듯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행이라면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무엇 하나라도 더 보고 경험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이 둘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아무리 낯선 곳에 있더라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는 것.
둘째, 처음 보거나 새로 경험하는 것들이 많다면 여행의 기운이 더 올라간다는 것.


이리 보면, 여행은 '마음의 여유'와 '새로운 것을 탐구하려는 의도'가 어우러진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둘 중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여행은 성립될 수가 없다.


누군가는 '경제적 여유'도 여행의 조건으로 삼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음의 여유'에 종속된 조건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마음의 여유'는 추상과 구체를 아우르는 말이고, 그 둘 모든 게 해결되었을 때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 주재원을 할 때였다.

암스테르담 시내는 내게 있어 여행지가 아니었다. 자주 갔던 곳이고, 출장자들을 데리고 수 백 바퀴를 돌았기에 익숙하다 못해 아주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도 구석구석 누빌 수 있는 지경에 이르자, 흥미는 떨어졌고 같은 곳을 찍은 수십 장의 사진들이 휴대폰 메모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여행자의 눈과 마음으로 암스테르담 시내를 다시 보기로 했다.

차를 놓고, 트램을 타고 집을 나섰다. 관광객 코스프레를 하며 이곳저곳에 사진기를 들이댔다. 놀라웠다. 나는 일상에 찌든 주재원이 아니라, 무엇 하나라도 더 얻고 돌아가려는 여행자가 되어있었다. 같은 집의 감자튀김 맛도 달랐다. 운하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먹었던 그 감자튀김은, 내 인생 최고의 감자튀김으로 기억된다.


갔던 곳을 가면 여행이 아닐까?

일상은 여행의 조건에 부합되지 않을까?

해외여야만, 낯설고 처음 보는 것들이 가득해야만 여행일까?


누군가는 우리네 삶을 '지구 여행기'라 말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왜 왔는지조차 모른다. 방황이 숙명인 존재. 이것을 여행이라는 즐거움으로 바꾸고 싶다는 오기가 끓어오른다.


여행의 끝은 목적지에 닿았을 때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여행이 시작되었는지를 깨우칠 때가 아닐까.

이것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눈 뜨자마자 매일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된다.


어쩌면 그래서, 인간이라는 종족에겐 '여행'이라는 집단 무의식이 심어져 있는 것일 테다.

전 세계 70억 인구 중, 태어남의 이유와 죽음의 저 너머엔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태어난 자는 그저 울부짖을 뿐이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 울부짖음과 말 없는 사이.

그 사이에 살아가는 우리네 삶은 그렇게 여행이 된다.


갔던 곳이라도.

익숙한 곳이라도.

낯설지 않은 곳이라도.


모두 여행이 될 수 있다.

아니, 그 자체가 여행이다.


이미 여행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그저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특별하기도, 또 특별하지 않기도 한 여정의 굴곡을 그저 받아들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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