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Aug 23. 2022

글쓰기를 하고 나는 점점 더 잘 되고 있다.

'글쓰기라는 메타인지'를 하고 나서부터.

나를 잘 되지 않게 하던
마음속 말뚝 하나


나는 긍정적이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의 시선일 뿐, 그들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부정의 정도를 알지 못한다. 그 어두운 기운은 내 어릴 적 기억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인생 자체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내가 힘들어하는 모든 번뇌는 나를 사로잡는 기억들로부터다. 아버지를 일찍 잃은 기억, 가난했던 기억, 꿈이 없던 기억, 무엇하나 잘나지 못했던 기억 등.


돌이켜보면 그 모든 건 내 선택이 아니었다.

내게 일어난 일들은 불가항력적인 것들이었고, 어린 내가 할 수 있던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홀로, 삶은 이런 것인가를 반문할 겨를도 없이 어느새 나는 자라 어른이 되어 있었다. 희망이 없어 허리를 숙이고, 땅을 바라보며 걷던 내면 아이를 그대로 품고서.


어린 코끼리를 작은 말뚝에 묶어 키우면, 거대한 몸집이 되어도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뽑아버릴 수 있는 힘은 있지만, 그러할 수 없다는 생각에 갇힌 것이다. 그러니까 내 어릴 적 기억은 그 작은 말뚝이었고, 나는 커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와 물심양면의 결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나를 긍정적이라고 봤던 것일까?


사실, 나를 긍정적이라고 봐주는 사람들에겐 일종의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긍정적이라고? 나는 검고 작은 말뚝에 묶여있고,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고 내 앞날은 그저 어두컴컴한데?'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렴풋이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삶엔 역설이 가득하다. 어둠에서 벗어나 빛을 찾아다니는 내 모습이 그렇게도 긍정적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놀랍게도, 어느새 나는 사람들이 내게 해 준 그 말을 지푸라기 잡듯 잡고 있었다. 손아귀에 힘을 주어 꼬옥. 어쩌면 이것이 내 삶을 바꿔줄지 모른다는, 나를 붙잡아 고만고만한 삶으로 연명하게 하는 그 말뚝에서 벗어나게 해 줄 거란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그래,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야. 그러니,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지.'


긍정에 대한 착각


효과가 있었다.

긍정적이자고 마음을 먹으니 삶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을 느꼈다. 무언가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도 생겨났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또 한계를 맞이했다.

슬럼프와 번아웃을 겪으며, 어릴 적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말뚝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말뚝에 묶인 줄이 조금 더 늘어난 것일 뿐 나는 아직도 그것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왜일까?

긍정적으로 살기로 했는데.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는데. 삶은  또 나에게 시련을 주는 것일까?


모든 것이 잘 되지 않을 거란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루하루가 두렵고, 내일이 오지 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야, 글을 쓰고 나서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가짜 긍정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던 것이다. 물론, 긍정적 생각이라는 출발은 좋았다. 어느 정도 내 어두운 과거를 밝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가짜 긍정은 현실을 왜곡한다.

그저 '잘 될 거야...'란 말로 스스로를 속인다. 마치, 맹수가 나타났을 때 머리만 땅 속에 처박아 숨는 타조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란 말을 하며 내게 일어난 상황을 회피하거나 정당화했다. 이런 일이 하나둘 쌓이면서, 그것들은 누적되었다.


누적된 무게와 부피만큼이나.

그것들은 고스란히 내 삶에 '고난'이라는 형태로 변화하여 내 삶에 들이닥쳤다.


글쓰기와 메타인지를 통해 알게 된
진정한 긍정의 의미


앞서도 말했지만, 삶은 역설로 점철된 아이러니 그 자체다.

그 고난에 압도당한 나는 '글쓰기'를 다짐하게 된 것이다. 이게 얼마나 역설적인 것이냐 하면 나는 글을 써본 적도, 배워 본적도, 일기를 써 본적도 그리고 꾸준히 무언가를 할 깜냥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다고 마음먹었다니, 사실 지금도 왜 그랬는지를 100% 이해하거나 기억할 수가 없다.


다만, 추측해보건대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를 알아야겠다는 강력한, 그 어떤 힘에 이끌린 것이다.


결론은?

그것은 나를 '메타인지'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글쓰기는 그 자체가 메타인지다. 글을 쓰는 나와, 글 안에 등장하는 나와, 그것을 검열하는 나. 과거를 후회하고, 현재를 조망하며, 미래를 다짐하는 수많은 '나'가 동시에 어우러지는 아모르파티. 한 걸음 벗어나 나를 보고, 마음속 CCTV를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 보고. 내가 알고 있던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긍정'의 주제로 다시 돌아가, 메타인지로 깨달은 바를 좀 더 설명하자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아봤을 것이다. 참 재밌는 게, 'Negative'가 나오면 좋아하고, 'Positive'가 나오면 슬퍼해야 한다는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Positive'란 단어는 '긍정'이란 뜻이다. '긍정'은 모든 걸 좋게 봐야 하는 뜻으로 알고 있었는데, 상황이 그러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긍정'의 뜻을 찾아보면 이해가 된다.

'어떤 생각이나 사실 따위를 그러하거나 옳다고 인정함.' - 어학사전 -


이전엔 알지 못하던 단어가 눈에 뜨인다.

'인정'이란 단어다. 그러니까 '긍정'은, 무조건 '잘 될 거야'란 뜻이 아니라 일어난 사실을 '인정'하겠다는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정'한다는 건 받아들이겠다는 것이고, 우리는 이것을 '수용'이나 '포용'이라 말한다.


그러니까, 가짜 긍정은 현실을 왜곡하여 그러하지 않은 것도 그렇다고 착각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고, 진짜 긍정은 있는 그대로를 판단하고 인정하여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하나의 현상이자 판단 잣대인 것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 검사를 하고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다면, '괜찮아, 나는 평소 건강하니까 금방 나아질 거야'라는 가짜 긍정으로 현실을 왜곡하거나 회피하는 게 아니라 '아, 격리를 하고 나 자신을 잘 챙겨야겠다'라고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대책을 세워 그것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긍정'이다.


이를 깨달은 나는, 비로소 나를 오도 가도 못하게 했던 말뚝의 뿌리 뽑을 수 있었다.


글쓰기를 하고
나는 점점 더 잘 되고 있다.


말뚝의 뿌리를 뽑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전의 어릴 적 기억에 갇혀 나는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그 이상으로 이루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글쓰기를 통한 메타인지'가 나를 변화시킨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나와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돌아보면서 깨달은 진짜 긍정의 힘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진짜 긍정은 '메타인지 글쓰기'라는 토양에 깊이 뿌리내려 견고하다. 강풍이 불어 흔들린다한들, 그것은 부러지지 않는 유연한 대처다.


그렇다면, 글쓰기를 통해 내가 얻은 건 무엇일까?

더 나아지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첫째, 본업에 더 충실하게 된다.


출근을 알리는 알람 소리에 괴로워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메타인지 글쓰기를 실천하는 지금도 출근을 위해 일어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점은 내 '직업'에서 '업'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업'에 대해 고민하니,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그러하니 나는 직장인이라는 내 본업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예전엔, 직장인이라는 내 페르소나가 너무나도 초라해 보였다.

전문직이란 타이틀을 얻지 못한 열등감도 있었다. 하고 싶은 일 보단,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해가며 사회생활하는 것이 비참하기까지 했다.


왜 나는 (직장인으로서) 행복하지 못할까를 자문했다.

메타인지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나만의 해답을 하나하나 적어 나갔다.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들은 <직장 내공>과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란 책으로 출판되었다. 돌아보니, 나는 생각보다 더 대단한 존재였다. '통근'의 '근'자가 '부지런할 근'이란 걸 알고는, 나는 생각보다 부지런한 존재였다는 것에 감탄했다.


단순한 '직업'이 아닌, '업'이라고 생각하니 일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성과도 나기 시작했다. 경쟁이 치열한 주재원을 두 번째 하고 있고, 억대 연봉을 받고 있다. 한국은 물론 중동, 유럽, 미국, 중남미 등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는 전문가가 되었다. 더불어, 예전엔 형편이 안되어하지 못했던 MBA 공부도, 회사의 지원으로 마쳤다.


이 모든 게, 글쓰기를 시작했고 스스로를 메타인지한 결과라고 나는 믿는다.


둘째, 경제적 파이프라인이 확장된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는 그저 내 이야기를 꺼내어 놨을 뿐인데 어느새 나는 한 번의 투고 없이 8권의 책을 낸 출간 작가가 되어 있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를 돌아보니, 이 역시 '메타인지'의 힘이었다. 평범한 내가 어떻게 이와 같은 것을 해냈을까를 돌아보니, 그것은 '페르소나 글쓰기'로 귀결되었다. '페르소나 글쓰기'는 나의 페르소나 (사회적 역할)를 '나열'하고, 각각의 페르소나를 '세분화'하여 글의 소재를 찾아내어 쓰는 기법이다. 실제로, 나 또한 이것으로 꾸준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글쓰기에 대한 나만의 비법과 꾸준한 글쓰기를 이어가다가, 이것을 나누자고 마음먹었다.

나누자고 마음먹은 모든 것은 나만의 콘텐츠가 되었고, 글쓰기를 통해 자아를 찾아가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는 그것이 가치가 되어 자본주의 특성에 따라 돈으로 환산되어 돌아왔다.


책 인세, 글쓰기 강의 (온, 오프라인), 글 기고, 출판 프로젝트 및 또 다른 전문 강의 등을 통해 다양한 경제적 파이프 라인이 형성되었고 그 금액은 억 단위를 넘었다.

더불어, 그 파이프 라인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확장되고 있다. 무엇보다, '스테르담'이라는 브랜딩이 형성되고 있으나, 사실 나는 이것이 돈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가치이자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영향력과 자기 효능감이 강화된다.


사람은 '인정 욕구'로 가득 찬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치기를 바란다. 물론, 그것은 '좋은 영향력'일 수도 있고, '나쁜 영향력'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누군가에게 내 영향력을 전하고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사실, 이것은 '존재'와 관련이 있다. 사람이 인정 욕구를 추구하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확인하는 숙명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자기 효능감'이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를 철저하게 돌아보고 연구해야, 나만의 철학이 생기고 그것을 영향력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나는 '선하고 강한 영향력'을 추구한다.

내가 글쓰기로 얻은 위안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다. 실제로, 글쓰기 강의나 직장인 동기부여 강의를 통해 변화되는 분들을 보면 오히려 내가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걸 얻었단 생각이 든다.


나는 브런치 작가님들로 구성된 '팀라이트'라는 글쓰기 레이블을 운영한다.

그곳에 모인 분들은, 돈 이상의 가치를 보고 나와 함께 하는 분들이다. 글쓰기의 본질과, 꾸준한 글쓰기로 메타인지를 실천하시는 분들이다. 내 결심과 의지의 파동은 비슷한 사람들과의 인연을 끌어 모은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잘 되는 사람들은 서로 모인다.




글쓰기를 통해 참으로 많은 것이 변화되었다.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들을 향유하고 있고, 어렸을 땐 가지지 못했던 꿈을 하나하나 현실화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변화된 많은 것들을 다시 돌아보건대.

그것은 세상이 변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글쓰기를 통해.

메타인지를 통해.

글쓰기라는 메타인지를 통해.


가지고 있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스스로 작은 말뚝에 묶여 있다는 것과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던 무지는 글쓰기와 메타인지를 통해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하나 둘 무너지자, 나는 점점 더 잘되고 있음을 '알아챈다'.


'잘 되고 있음'은 완결형이 아니다.

현재 진행형이자 미래 확정형이다.


나는 글을 계속해서 쓸 것이므로.

계속하여 나 자신을 메타인지할 것이므로 말이다.




* 글쓰기의 본질을 전하는 사람들, 팀라이트가 브런치 글쓰기 강의와 공저출판 프로젝트를 런칭 했습니다. 많은 관심과 함께 주변의 글쓰기가 필요하신 분들께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팀라이트 클래스 안내] 브런치 글쓰기 x 공저 출판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선정한 지금의 단어, '향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