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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22. 2022

내가 선정한 지금의 단어, '향유'

나 스스로를 향유할 줄 알아야, 내 삶은 변화할 수 있다.

"할 일 줘요?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나의 해방 일지'라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두 귀를 의심했다.

맥락 상, 남녀의 오묘한 기운이 감도는 상황에서 두 인물의 격정적인 감정을 따라 내 머릿속엔 이미 '사랑'이란 단어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설령, 누군가는 뻔한 '사랑'이 아닌, 다른 단어를 떠올렸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도 '추앙'이란 단어는 생각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배우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TV 화면에서 해방되어 그것을 뚫고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이내 작가가 누군지를 찾아봤다. 더불어, 기획 의도도 엿보았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지겹게 평범한 삶에서 구원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방법으로 작가는 '채움'을 제시했다.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중략)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사랑으론 안돼.
추앙해요.

- <나의 해방 일지> 중, 염미정이 술을 마시고 있는 구 씨에게


'추앙'은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이란 뜻이다.

일상적이지 않은 이 단어에 고개는 갸우뚱했으나, 마음엔 뭔지 모를 무언가가 요동했고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도 해당된 듯하다. 아마도 사람들은 그 뜻을 모두 찾아봤을 것이고, 모두의 지겹도록 평범한 삶에서 한 걸음 벗어나 스스로를 바라봤을 것이다.


나는 행복한가.

내 삶은 특별한가.

나는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는가.


한 번도 (드라마에서) 들어보지 못한 단어를 맞닥뜨리고는 당황하며, 스스로에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또 다른 단어 또한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그건 바로 '붕괴'란 단어였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박해일)은 형사의 품격을 잃고, 용의자인 서래에게 이와 같이 성토한다.

한국말을 잘 몰랐던 서래는 해준이 뛰쳐나간 그 즉시 휴대폰으로 '붕괴'란 단어를 검색한다. 그리고 훗날, 서래는 이 단어를 '사랑'으로 해석하고 그렇게 받아들인다.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해준의 붕괴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관객은 이미 목도하고 있었다.

해준만 몰랐을 뿐. 그 자신만 혼란스러웠을 뿐. 꽉 조여 맸던 신발끈이 풀릴 때부터, 용의자에게 값비싼 초밥을 사줄 때부터 그 사랑은 시작된 것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도 '해방'과 '추앙'이라는 단어와 빗대어지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게 바로 '마침내'와 '붕괴'란 말이다.

그 두 단어 모두, 해준이 서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과정을 함축하는 말이 되었다. 실제로, '헤어질 결심' 작가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이미 '나의 해방 일지'에서 나온 단어들로 인해 영화의 대사들이 아류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내용이 있다.




미디어와 문화의 힘은 이처럼 동시성을 이룬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둘 모두, 마음을 움직이는 단어를 내어 놓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찾아보게 하거나 스스로를 그 단어에 적용시켜 보게 했다.


더불어, 그 공통분모가 '사랑'이란 게 참으로 놀랍다.


내가 선정하고 싶은
지금의 단어, '향유'


그 단어들로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돌아보게 해 준 것은 고맙지만, 그것으로부터 도출된 감정과 다짐은 내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갑작스러운 아집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말을 원하는가.

내가 되고 싶고, 갖고 싶고, 이루고 싶은 그것에 힘을 보탤 수 있는 말.

내가 지금 행복한 지, 아닌지. 내가 채워지고 있는지 소진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말.


갑작스럽게.

정말,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향유'란 말이 떠올랐다.


'향유'는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며 누림'이란 말이다.

'누릴 향'자와 '있을 유'로 이루어진 말이다.


달리 바라보면, '있는 것을 누린다'란 말도 된다.

지겹다고 생각한 일상,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자아. 결핍으로 중무장한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삶이 떠올랐다. 나는 그것을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보았고, 지금까지는 내 삶을 향유하지 못했단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니까, '향유'란 단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른다.

향유하지 못한 과거, 향유하고 있는지를 묻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 내가 가진 것들을 향유하고자 하는 바람.


나는 스스로를 채우려 아등바등하는데, 또 다른 나는 그것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러니를 발견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가엽고도 가련한 나는 그렇게 허덕이며 삶을 살아내고 있던 것이다. 빠진 밑을 채우려 하거나, 다른 독에 물을 담아야지... 란 다짐은 왜 하지 못한 걸까? 무엇이 그리 바빠,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했고 있는 것 마저도 누리지 못하고 살았는가?


결핍은 분명 더 나은 나를 만들 게 하는 자극제가 되기도 하지만, 있는 것조차 향유하지 못할 때 그것은 고단함의 원동력이 된다.




나는 이제 '향유'하고 싶다.

지금까지 무던히도 달려왔던 나를 잠시 멈춰 세우고는.


잘하고 있다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있는 것을 돌아보며 기뻐하자고.

앞으로도 더 잘 될 것이라고 힘을 실어 주고 싶다.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나 스스로를 점검하고 굳게 믿고 나아가는 것.

바로 이것이 내 삶을 채워줄 것이고, 지금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그 어떤 단어보다 더 크게 내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랑.

그것은 나로부터 여야 한다.


나 스스로를 향유할 줄 알아야, 내 삶은 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잘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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