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샤워'라. 나는 베이비샤워를 해보거나 참여해본 적이 없다. 이미 중학생이 된 아이들이 태어난 그때를 돌아보면, 그러한 문화는 없었고 태어나기 전과 후를 함축하여 '돌잔치'라는 것으로 대체했던 기억이 난다.
베이비샤워는 18세기 미국에 건너온 독일 은세공 및 장사꾼이었던 프란츠 샤우어가 시작했다.
뉴욕 상류층을 대상으로 서로에게 선물을 주는 행위를 활성화시켰고, '샤워'라는 단어 또한 출산을 앞둔 임산부가 사람들로부터 '소나기를 맞는 것처럼' 엄청난 양의 선물 공세를 받는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이후, 미국과 캐나다를 통해 보편화되었고, 영화와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몇 시에 진행이 될까요?"
"오후 3시쯤 시작해 아마 저녁 6시면 끝날 거예요."
세 시간이라.
그 정도면 문화체험이라 생각하고 참석하기에 부담이 없었다. 가겠다고 했다. 주재원 신분이므로, 주말에도 마음을 놓을 수 없던 나에게 세 시간의 새로운 경험이라면 내가 일하는 나라의 문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에.
아, 게임을 한다고요?
"찰리(내 영어 이름)는 그곳에서 게임을 해야 해요. 기저귀를 찰 수도 있고, 노래를 할 수도 있어요."
아, 갑자기 부담이 몰려왔다.
베이비샤워라는 낯선 파티에 참석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게임에 노래까지? 이게 무슨 말이지? 불혹을 훌쩍 지난 이 나이에... 게임과 노래를? 순간,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이미 참석하겠다는 말을 남겼기에 한국인의 이미지와 신용(?)을 위해 우선 참석해보기로 했다. 외국인이니 예외 적용을 받을 수 있겠단 한줄기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서.
그러나 그러한 예외는 없었다.
그럴만한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 분위기에 동화되었어야 했고 오랜만에 나를 짓누르던 진지하고 무거운 페르소나를 벗어 버릴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길거리를 지나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집이었다.
알록달록한 색의 벽에 박힌 초록색 문이 열리자 집으로 가는 작은 뜰이 우리를 마중했다. 거실엔 이미 몇몇 사람이 있었다. 거실이라고 해야 네 칸짜리 소파와 작은 식탁 하나가 있는 협소한 공간이었다.
벽엔 '베이비 샤워'란 풍선이 붙어 있었고, 가운데 공갈 꼭지 모양의 풍선엔 '딸'이란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런데, 4시 30분이 되도록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주인공의 언니가 다가와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시잖아요. 멕시코 타임.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자, 이제 게임을 시작하지.
정신 차려보니 그 좁은 공간에 20여 명의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소란한 대화 속 사람들 얼굴은 무척 상기되어 있었다. 나이대는 천차만별이었다. 꼬맹이부터 80대의 노인까지. 그들의 대화를 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안에서의 이질감은 크지 않았다.
모두가 Amigo(친구 남자)였고, 모두가 Amiga(친구 여자)였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이 불룩한 배를 하고 나타났고, 잠시 음식을 먹은 뒤 게임이 시작되었다.
이 갑작스러운 빠른 전환은 뭐지?
(나중에야 이해를 했는데) 우선, 다리를 꼬지 말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다리를 꼬으면 기저귀를 차는 벌칙이 내려졌다. 나도 모르게 다리를 꼬고 있던 나는 친구의 도움으로 재빨리 다리를 풀 수 있었는데, 적발(?)된 다른 분들은 여지없이 기저귀를 찼다. 기저귀를 찬 사람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도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이어, 아기 가방에 들어가는 물건들을 제한 시간 안에 많이 써내는 게임, 한 사람이 눈을 가리고 다른 한 사람에게 이유식을 빨리 먹이는 게임, 임산부 배의 둘레를 눈짐작으로 가늠하여 휴지를 그 길이로 잘라 직접 배에 대보는 게임들이 이어졌다.
가장 난처했던 상황은 쪽지 뽑기였는데, 각자의 사람에게 쪽지를 나눠주고 그것에 적힌 것을 행해야 하는 아주 무서운(?) 게임이었다.
거기엔, '아기처럼 울기', '아기처럼 기어가기', '아기처럼 어리광 부리기' 그리고 '뱃속 아기를 위해 노래 하기'등이 적혀있었다. 사람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쪽지에 적힌 것을 최선을 다해 해냈다. 80세의 할머니께서도 '아기처럼 어리광 부리기'를 위해 바닥에 누워 자지러짐을 연기했고, 내 스페인어 선생님은 네 발로 기는 연기를 걸쭉하게 해냈다. 그렇다면 내가 뽑은 건? 정말로 바라지 않았던 '노래 하기'였는데, 순간 식은땀이 등을 타고 내려감을 느꼈다. 여기서? 노래를? 그렇다면 뭐를? 쥐구멍이 있다면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외국인이니 예외를 달라고 좀 해볼까란 생각을 하다가 순간 바닥에서 어리광 부리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내 차례.
나는 일어나 스페인어로 이것은 아기를 위한 노래이며, 아기를 축복하는 가사의 한국어 노래라는 설명을 한 뒤 노래를 불렀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멜로디의 힘은 대단했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고, 나는 노래를 부르며 주인공에게 다가가 배를 어루만지며 진심으로 아기에게 축복의 마음을 전했다.
편견 없는 파티, 아무도 아닐 수 있는 자유.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베이비 샤워 파티인데, 그곳엔 주인공의 남편이 없었다.
나는 스페인어 선생님에게 물었다.
"그런데, 남편은 어디에 있나요?"
"몰라요."
"모른다고요? 주인공이 친구의 동생 아닌가요?"
"네 맞아요. 그런데 몰라요. 따로 묻지 않았어요."
놀라운 건, 뱃속 아기가 둘째라는 사실이며 첫째는 14살이라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건, 주인공인 엄마의 나이가 28살이란 것이고 그렇다면 첫째를 14살에 낳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14살의 딸 또한 베이비 샤워에 참석했다.
갑자기 모든 게 달라 보였다.
나는 선생님에게 또 질문했다.
"아, 그럼 아빠가 같은 분인가요? 이런 상황이... 멕시코에선 일반적인 가요?"
"그것도 몰라요. 참 한국 사람들은 이것저것 질문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냥 함께 즐기면 될 텐데."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다.
나는 줄곧 질문만 해대고 있었다. 한국사람 파티였다면, 남편은 뭐하는 사람이래... 어쩌다가 둘째를 갖게 되었대...라는 무성한 이야기가 오갔을 테고, 그 사이엔 수많은 질문과 대답 그리고 짐작들이 가득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맥락의 부재를 견디지 못한다. 스토리의 여백을 채우려 하고, 때문에 꼬치꼬치 묻게 된다.
순간,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던 내게 그 누구도 어떤 질문을 하지 않았단 사실이 떠올랐다.
이름 정도만 묻고, 간단히 인사한 게 전부였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고, 나이는 몇이고,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몇 살인지 등에 대한 대답을 한 기억이 없다.
묻지 않았으니까.
대답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아무도 아닌 사람'이었고, 단지 '파티를 즐기면 되는'사람이었다.
갑자기 '자유'란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나이를 불문하고, 체면은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언어와 국경을 넘는 자유.
그렇게, 나는 온전히 파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선물 공개 시간이 다가왔다.
'샤워'란 말이 어울릴 만큼 다양한 선물들이 즐비했다.
사회자는 주인공에게 누구의 선물일 것 같냐며 물었다.
누구의 것인지를 맞추지 못하면 선물을 준비한 사람이 주인공의 얼굴에 펜으로 낙서를 한다. 반대로, 주인공이 누구의 선물인지를 맞추면 선물을 준비한 사람의 얼굴에 낙서가 남는다.
선물이 공개될 때마다, 조그마한 옷이나 신발 그리고 우유병을 보며 사람들은 연신 탄성을 질렀다.
더불어, 주인공의 얼굴엔 사랑스럽고 장난스러운 낙서가 하나 둘 늘어났다.
오후 3시 ~ 6시 정도까지 파티가 이어질 거란 선생님의 말은 거짓이었다.
이미 시간은 밤 10시를 넘기고 있었고, 나갈 채비를 하고 있던 그때에도 몇몇 사람들은 이제 막 도착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멕시코 사람들이 좋아하는 '피에스타'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고 아마도 그것은 새벽 3시까지는 충분히 이어질 거란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 파티는 새벽 5시에 최종 마무리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 다이내믹했던 하루를 돌아봤다.
그 파티에서 내가 느낀 존재의 자유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나이와 체면, 조건과 이유를 불문한 파티는 오롯이 아기만을 위한 것이었고, 또한 오롯이 참석한 사람들의 웃음을 위한 것이었다.
행복은 그렇게 조건이 없어야 하고, 지금을 즐겨야 하는 것이란 걸.
멕시코 땅에서, 멕시코 사람들과 함께 느꼈다.
행복. 자유. 지금.
그것들로 세차게 샤워를 한 기분.
무언가 그토록 충만한 하루였다.
* 글쓰기의 본질을 전하는 사람들, 팀라이트가 브런치 글쓰기 강의와 공저출판 프로젝트를 런칭 했습니다. 많은 관심과 함께 주변의 글쓰기가 필요하신 분들께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