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사리 입사한 이 회사를, 요즘 사람들은 왜 이리 쉽게 관둘까? 들어와서는 좋은 자리나 승진에 왜 그리 욕심이 없을까?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 시대에, 왜 이곳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지 않는 걸까?
잘 이해 안 되시죠?
저도 처음엔 많이 놀랐습니다. 그러나 '낀 세대'라는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보니, 이젠 윗 세대는 물론 요즘 세대도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평생직장이란 꿈을 안고 입사한 저 자신을 떠올려봅니다. 그 생각이 아직 유효할까요? 반은 그렇고 반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20년이란 세월을 보냈으니 그렇게 말할 만도 하지만, 100세 시대라는 관점에서 보면 회사 다닌 날보다 더 긴 시간을 회사 밖에서 지내게 될 테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평생직장을 꿈꿔보기라도 한 동시에 이제는 평생직장이란 꿈은 깨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은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팁 하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건 꼭 세대의 갈등을 최소화할 때만 필요한 게 아니라, 가족과 친구 그리고 모든 지인에 통용되는 삶의 지혜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상대방의 '욕구'를 헤아려보는 겁니다.
우리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이니까요.
자, 그럼 그 욕구를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요즘 사람들 욕구는 거꾸로 흐릅니다.
"하나의 욕구가 충족되면 위계상 다음 단계에 있는 다른 욕구가 나타나서 그 충족을 요구하는 식으로 체계를 이룬다. 가장 먼저 요구되는 욕구는 다음 단계에서 달성하려는 욕구보다 강하고 그 욕구가 만족되었을 때만 다음 단계의 욕구로 전이된다."
꼭 심리학을 공부한 적이 없더라도 '매슬로우 욕구 단계설'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이야기는 제 저서인 <직장 내공>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매슬로우 욕구 단계로 본 직장인'이란 글이었습니다. 매슬로우는 '인간은 자기실현을 지향하며 성장해가는 동물'이라 말했습니다. 그 원동력은 바로 '결핍 욕구'와 '성장욕구'입니다. 그 두 가지 원동력을 마주했을 때 저는 직장인을 떠올렸고, 매슬로우 욕구 단계는 직장인과 딱 맞아떨어졌기에 제가 재빨리 글로 옮겼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직장인에게 '월급'과 '승진'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요? 여러분께서도 그 둘을 위해 (자아마저 잠시 뒤로 한채) 달려오지 않으셨나요? 월급은 항상 모자라니 '결핍'이란 말과 어울리고, 승진을 '성장욕구'로 치환하면 매슬로우의 이 이론은 직장인에게 딱 들어맞게 됩니다.
전통적인 매슬로우 욕구단계론에 따르면 사람은 '생리적 욕구'를 채워야 '안전의 욕구'와 '사회적 욕구'로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직장인들이 먹고살기 위해 일을 시작하고 비교적 안정적인 회사에 들어가려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하위 욕구가 충족이 되면 이제는 '존경'과 '자아실현'이라는 상위 욕구를 추구합니다. 기성세대에게 딱 맞는 흐름입니다. 직급도 올라가고 월급도 많아지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존경, 권력, 자아실현 등의 보이지 않는 가치에 좀 더 집중하게 됩니다.
즉, 매슬로우의 이론대로 '하위 욕구'에서 '상위 욕구'로 직장인은 움직여 왔습니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하위 욕구'가 '상위 욕구'를 위협한다는 명제입니다. 그러니까, 배고프고 안전하지 않으면 자기실현이고 뭐고 없다는 뜻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트렌드를 볼까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입사하고도 아니라 생각하면 과감하게 퇴사를 합니다.
재미가 없어서, 획일적인 게 싫어서, 내 주위 상사와 선배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 좋은 회사에 입사했다는 건, '하위 욕구(생리/ 안전/ 사회)'를 충족했단 뜻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 (이 직장에서는) 위로 가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리고는, 하위 욕구가 위협당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기성세대들이 보면 매우 놀랄만한 일입니다.
그분들의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매슬로우 욕구 이론이 틀린 걸까요?
아니면, 매슬로우 이론이 직장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걸까요?
욕구는 그대로지만 흐름은 변합니다.
저는 매슬로우 욕구 이론 그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인간의 '욕구'는 공통적이며 불변하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상황과 시대에 따라 그 욕구의 강약과 흐름의 방향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배가 고픈데 자기실현이 무슨 의미가 있어?'에서 '재미가 없는데 살아서 뭐해?'로 그 방향이 바뀐 겁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매슬로우 욕구 흐름 다시 보기 by 스테르담
저는 이것 또한 '세대 차이'가 아니라 '시대 차이'로 설명합니다.
기성세대 시대는 말 그대로 배고픈 시대였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은 생존을 위한 지상 최대의 과제였습니다. 집단 지성과, 집단 힘으로 그 시대를 이겨내야 했으므로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함 또한 선택이 아닌 의무였습니다. 자아실현은 그 이후의 문제였죠.
그러나 지금은 먹는 게 남아도는 시대입니다.
'에이, 설마 굶어 죽겠어?'란 정서가 확고합니다. 더불어, 경제 성장이 정체되면서 사람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자기 계발'에 온 힘을 쏟게 되었습니다. 시대가 돌아가는 양상을 보니, 더 이상 회사가 나를 평생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걸 어려서부터 터득한 겁니다.
자기 계발도 재미와 흥미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어디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내가 재밌고, 내 입 하나 건사할 수 있으면 굳이 집단에 소속되지 않으려 합니다. 회사에 이미 속해 있는 사람 또한 어서 빨리 집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합니다.
이밖에도 주 40시간으로 인한 여가 시간의 증가, 코로나 19로 앞당겨진 재택근무나 비대면 활동들이 욕구의 방향을 더 확실하게 틀어 놓았습니다.
온갖 '욕구'가 모인 곳이 바로 직장입니다.
그 욕구의 색채는 그 어느 곳보다 더 짙습니다. 욕구는 사람의 마음에서 기인합니다. 마음의 움직임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를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현명해질 수 있습니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 그리고 오늘도 알 수 없는 나의 마음까지도요.
현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들이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저는 그분들도 요즘 세대와 똑같이 행동했으리라 확신합니다.
주식의 개별 지수가 전체 지수를 이길 수 없듯, '세대'란 논제는 '시대'란 명제 앞에 한 없이 작아지기 때문입니다. 즉, 각 세대는 시대의 조류와 양상에 따라 저마다의 생존 방식을 찾아내고 또 각자의 방법으로 결핍 욕구와 성장욕구를 채워가고 있는 겁니다.
이제 좀 나와 다른 세대가 이해되시나요?
사람은 타자의 욕구를 욕구하며 살지만, 그렇다고 내 욕구가 타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생각에선 벗어나야 합니다.
그 흐름마저도 말입니다.
이것만 떠올려도, '시대'와 '세대'에서 오는 잡음은 확연히 줄어들 것입니다.
* 글쓰기의 본질을 전하는 사람들, 팀라이트가 브런치 글쓰기 강의와 공저출판 프로젝트를 런칭 했습니다. 많은 관심과 함께 주변의 글쓰기가 필요하신 분들께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