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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26. 2022

월급은 '받는 것'이 아니라, '버는 것'이다.

나는 '나'라는 기업을 운영하는 오너다.

월급은 꼬박꼬박 들어온다?


사업을 하는 친구가 맥주잔을 비우며 말했다.

"너는 월급 꼬박꼬박 들어와서 좋겠다. 사업을 하다 보면, 월급쟁이일 때가 오히려 더 그리워."


이해가 되었다.

사업은 돈의 흐름을 스스로 챙겨야 하고, 기대 이상으로 많이 들어올 때도 있지만 의도치 않게 돈이 부족한 경우도 있으니까. 그 불안정함을 몸소 겪다 보면, 월급쟁이 시절의 안정감을 떠올리는 게 당연하다는 공감이 인 것이다.


대게 월급은 (회사가 쓰러지지 않는 한) 끊기는 일이 없다.

'월급'의 의미만 봐도 알 수 있다. 월마다 받는, 그러니까 한 달이 지나면 내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 우리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출근을 해내는 것처럼, 월급은 비, 바람과 상관없이 들어온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난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 월급이 꼬박꼬박 한 것일까?

둘째, 월급은 들어오는 것, 그러니까 '받는 것'일까?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잔을 들며,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월급이 꼬박꼬박 한 게 아니라,
내가 꼬박꼬박 한 것이다.


20년 간 한 직장에서 일하면서 나는 월급이 끊긴 적이 없다.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내 회사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과, 둘째는 내가 매일을 끊임없이 출근해냈다는 것이다. 출근을 하지 않는데 월급이 나올리는 없다.


그러니까 굳이 이야기하자면, 월급이 꼬박꼬박 한 게 아니라 월급을 받는 우리가 꼬박꼬박 하다는 것이다.


작금의 시대는 노동력보단 자본 스스로의 증식이 더 빠르다.

노동력이 돈을 낳는 시대에서 돈이 돈을 낳는 시대로 변한 것이다. 그러하다 보니 노동력은 평가절하되기 일쑤다. '퇴사'란 단어는 이제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최후의 수단도 아니다. 수틀리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노동의 의무를 쉽게 떨쳐버릴 수 있다. 먹고사는 것에 대한 책임과 그에 대한 수습은 저마다의 몫이지만, 그럼에도 이전보다는 확실히 노동의 거부는 쉬워졌다.


사실, 나는 노동의 신성함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내 생각도 바뀌었다. 자본 스스로의 증식이 노동의 그것보다 빠르다는 걸 나 또한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월급의 액수만 볼 때 일어나는 단편적인 생각이다. 직장인에게 있어 월급은 언제나 빠듯하다. 그러나 그 월급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그러니까 나의 꼬박꼬박 함에 집중하다 보면 의미가 생긴다.


자본을 위한 자본력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노동의 가치를 우선 눈여겨봐야 한다.


월급은 '받는 것'이 아니라,
'버는 것'이다.


직장인은 '주인의식'이란 말에 대한 알러지가 있다.

이미 나는 '노예'이고, 회사가 '주인'이란 사상이 팽배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직장 내공>에서 이를 달리 정의한 바 있다.

진정한 주인 의식이란, '누군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아닌, 스스로의 주인인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이다.

<직장내공>, 스테르담


우리는 보통 월급을 '들어오는 것' 또는 '받는 것'이라 표현한다.

그런데 이게 맞는 말일까? 주인의식에 대한 알러지를 느끼고, 나는 노예라는 근성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 표현에 대한 아무런 의문이 없었다. 그러나, 새롭게 주인의식을 정의하고 주체성을 가지고 일 한 뒤부터는 계속해서 그에 대한 의문이 올라왔다.


생각해보니, 월급은 '받는 것'이 아니라 '버는 것'이었다.

회사와 나는 계약 관계이고, 내 노동력과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회사 성과를 창출한다.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여 되돌아오는 것이 바로 '월급'인 것이다.


'나'를 1인 기업으로 생각해보자.

나는 하나의 회사다. 내가 가진 역량은 내 회사의 자산이다. 이 자산을 가지고 돈을 번다고 생각해보면, 직장생활이 다르게 보인다. 사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회사를 뛰쳐나와 프리랜서나 1인 기업을 운영하더라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어차피 내가 가진 역량을 바탕으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 이유는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의 주인인 나를 위해서다. 나는 나라는 기업의 오너다. 그리하여 돈을 벌어오고 있고, 이 벌어온 돈을 나에게 지급하고 있다. 이 지급된 돈은 나와 가족을 위해 쓰인다.


주인 의식을 갖는 게 당장 어렵다면, 월급을 '받는 것'에서 '버는 것'이라 생각해보면 된다.

더불어, 나는 '나'라는 기업을 운영하는 오너란 생각도 함께 하면 더 좋다.




언젠가 나는 지금의 '월급'을 그리워할 때가 분명 있을 것이다.

'들어오는 것', '받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


그러나 회사와 나의 관계는 놀랍게도 영원하지가 않다.

마치 영원할 것처럼 힘들어하고, 상처받고,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이 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의 회사 생활에서 무엇을 더 기여하고, 그 이상을 배워갈 수 있을까?


이것을 고민하는 자와, 그러하지 않은 자의 차이는 매우 크다.


월급을 '받고 있는 자'와, 월급을 '벌고 있는 자'의 차이.

딱 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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