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접'의 본질은 마일리지에 있지 않다.
영화 촬영장엔 특별한 의자가 있다.
그 이름은 '감독의자'와 '배우 의자'로 불린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쉽게 검색해볼 수 있다. '감독의자' 또는 '배우 의자'라고 치면, 접이식 간이 의자가 나온다. 이것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간이식이라 소박하다. 허름하다고 해도 그리 과한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의자는 매우 귀하다.
아무나 앉을 수 없다. 촬영장은 실내와 야외를 오가는 시시각각의 변화가 일어나므로 의자는 '희소성'의 가치를 지닌다. 어느 예능 프로에서 한 배우가, 촬영장에 자신의 의자가 없다가 생겨난 것을 보고 인기를 실감하게 되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러한 현상은 '상황적 맥락'과 '희소성'의 합작품이다.
영화 촬영장처럼 '상황적 맥락'과 '희소성'이 어우러지는 곳이 있다.
바로 공항이다.
참 묘한 곳이다.
비행이라는 이기(利器)를 누리기 위해 그보다 큰 불편을 감수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좋다고 히죽대기 일쑤다.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을 완성시켜주는 하나의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니 평소라도 쳐다도 보지 않을 딱딱한 의자 하나가 귀하고, 그리 특별하지도 않은 라면 하나가 기내에서는 진수성찬 취급을 받는 것이다.
나는 마일리지를 꽤 많이 가지고 있다.
잦은 출장 덕분이다. 이것은 희소성이 득세하는 공항에서 무언가를 좀 더 누릴 기회를 제공한다. 라운지를 이용한다던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빨리 탑승을 한다던가. 때로는 좌석 승급의 행운까지.
그런데 어느 날, 마일리지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는지 비행기 티켓에 'Priority'란 글자가 빠져있었다.
그것도 모른 채 먼저 탑승하려던 나는 제지를 받았고, 다시 다른 줄 뒤로 가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표를 받는 사람에게 항의해봤자 의미가 없을 거란 걸 알고 다시 줄을 섰지만,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 분노의 근원이 무언지를 생각 해보기로 했다.
특권 의식. 희소성이 가득한 묘한 곳에서는 작은 무엇 하나도 특권이 되고 만다. 나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던 것이다. 그러나 'Priority'란 글자가 없는 티켓을 들고 있는 나는 그 어느 특권 하나 누릴 수 없는 존재였다.
웃음이 났다.
나는 대체 무얼 바란 걸까?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스스로 무엇에 대접받고 있는가를 자문했다. 대접받길 바라는 마음. 그것도 누군가로부터. 그러하지 못할 때 밀려오는 분노는 나를 당황케 했고, 대접의 주체와 출처를 묻게 했다.
어느 한 영화에서 성공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남들에게 대접받기 위해서'란 대사가 있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은 '내가 나를 잘 대접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 영화 속 주인공도, 자신이 원하는 물질적인 것을 얻었지만 끝내 남들의 존경과 대접을 받지 못했고. 그는 스스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대접'의 본질은 마일리지에 있지 않다.
'대접'의 여부는 남에게 있지 않다.
마일리지로 대접받고자 했던 나는, 저 긴 줄의 뒤로 돌아가 스스로를 대접하자며 웃음 지었다.
화가 났던 것도 잠시.
비행의 설렘을 기약하며 줄어드는 줄에 나는 기뻐하기로 했다.
공항은 그렇게 참 묘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