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일상의 무게가 없는 낙원의 낭만은 있을 수가 없다.

by 스테르담

눈이 떠졌다.

나는 칸쿤 어느 리조트 수영장 침대 위에 있었다. 썬베드가 아닌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얻은 자리였다. 쉴 새 없이 비트가 마음을 파고드는 음악이 나오고 있었고, 그에 박자라도 맞추듯 카리브해의 파도는 철썩거리고 있었다. 지상낙원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었다. 사람들은 한결 같이 여유로워 보였고, 아가미만 없을 뿐 수영장에서 그들은 말 그대로 '물'아일체가 되어 있었다.


피곤함은 가시고 기분 좋은 노곤함이 여운으로 남아있었다.

마음이 편했다. 기분이 좋았다. 쫓기듯 살고 있는 일상에서 조금은 벗어난 듯했다. 이곳이 지상낙원이라면, 그렇다면 나의 일상은 무엇일까? 낙원이 아닌 다른 곳.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지옥?

전쟁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카리브해의 햇살 아래가 낙원일 수 있는 건, 내가 일상을 회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도망쳐 칸쿤으로 향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온전히 내 일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문득, 해변 위에서의 달콤한 낮잠은 얼마로 환산될까가 궁금해졌다.

4인 가족 기준의 비행기, 숙소 그리고 추가 지불한 캐노피 침대 비용. 그게 다일까?


아니.

질문을 바꿔 볼까? 이 여행과 낮잠은 '소비'일까 '보상'일까? 쓴 것 이상으로 무언가를 얻었다면 그것은 '보상'이 될 테고, 반대라면 그것은 '소비'일 수도 있고 그 이상의 낭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 지출한 것보다 더 많은 걸 얻어간다면 이 여행은 남는 장사인 것이다. 내내 '보상'이 되는 것이다.


도망치지 않은 낙원에서의 달콤한 낮잠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다.

뜨거운 햇살,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물장구를 치는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무엇으로도 나는 치환하고 싶지가 않다.


다시 돌아갈 일상은 낙원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낙원이 낙원일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날들이다.


일상이 버거울 때, 나는 카리브해의 이 달콤한 낮잠을 떠올릴 것이다.

지상낙원에 도달했을 때, 나는 일상의 진중함과 소중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다시.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일상의 무게가 없는 낙원의 낭만은 있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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