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등을 밀어 달라고 했다.

등은 가족이 밀어줘야 제맛

by 스테르담

나는 욕조 있는 호텔을 선호한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세상 편해지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 '시원하다'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이해하지 못했던 거짓말은 이제 내 것이 되었다. 그러게. 우리네는 왜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거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시원하다'라는 이율배반적 말을 할까.


과학적(?)으로 보면 뜨거운 것이 닿는 겉과 속의 그 반대되는 것들에서 느껴지는 상대적인 시원함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정서적으로 보면 답답하고 피곤한 것이 풀리며 느끼는 통쾌함을 '시원함'으로 표현하는 게 아닐까 싶다. 골몰하던 문제들이나 답답했던 것들이 해결되면 우리는 마음의 시원함을 느끼고 마니까.


여기에 하나 더.

시원함은 때를 미는 것에서도 온다. 때를 미는 것이 좋으냐 그러하지 않느냐의 논쟁이 있는 시대이지만, 내 어릴 적엔 그러한 논쟁은 불필요한 때였다. 대중목욕탕을 찾으면 거죽이 벗겨질 정도로 때를 밀어야 한다는 정서가 팽배한 시대. 그러하지 않으면 목욕비가 아깝다고 느낄 정도였으니까. 생각해보니 때를 미는 것이 어느샌가 잊힌 것은, 대중목욕탕의 쇠퇴와 맞물려 있지 않을까 한다. 뜨거운 물에 몸을 불리고, 시원하게 때를 밀어 진정한 목욕재계를 하던 그때가 그립다.


아버지와 일찍 이별한 나는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등을 밀어주는 아빠 앞에 다른 아이들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어서 빨리 그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물장구를 싶어서였을 것이다. 나는 그 아이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부러웠다. 등을 밀기 위해 나는 (그 당시 물가로) 2천 원의 세신 비용을 내거나, 긴 때수건을 대각선으로 잡아 등을 문대야 했다. 부러움에, 아쉬움에. 내 얼굴도 일그러져 있던 건 매한가지였다.


이번 여행은 욕조와 함께 였다.

마침 호텔엔 커다란 욕조가 있었다. 때수건을 미처 준비하진 못했지만, 문득 어릴 적 때를 밀던 생각이 났다. 등을 밀기 위해 혼자 아등바등하던 모습도 함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아내를 불렀다. 그리곤 등을 좀 밀어달라고 했다. 어릴 적 내 아쉬움을 아는지, 아내는 언제나 내 등을 시원하게 밀어준다. 때수건이 없어 때를 보진 못했지만 얼얼함과 시원함이 온 등을 채웠다.


등은 가족이 밀어줘야 제맛이다.

서로의 허물도, 서로의 때도 이해해줄 수 있는 사이. 가장 유아적이고, 가장 무방비인 모습조차도 사랑해줄 수 있는 관계.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사랑하는 사람의 손이 닿으면 무언가 치유되는 느낌이 온몸을 휘감는다.


그래서일까.

아내가 등을 밀어주는 사이 나는 마음으로 울고, 얼굴로는 미소 짓고 있었다.


행복은 불행의 깊이만큼 온다는 말이 맞다.

어릴 적의 결핍과 아쉬움이, 오늘의 감사함과 행복으로 귀결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따뜻함과 시원함이 공존하는 여행.

나는 이 순간을 정녕 사랑한다.


이번 여행.

참으로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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