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나를 샅샅이 살펴보기.
나를 알아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
'나'를 알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를 완벽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의 '페르소나'를 규명하는 것이다.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던 가면으로 심리학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은 이를 ‘사회적 역할’로 정의했다.
만약 여러분이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란 질문을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아마도 나이와 직업 그리고 성격으로 스스로를 설명할 가능성이 높다. 그 모든 게 바로 '페르소나'다. '나'는 온전하고 유일한 존재이기보단, 객관적으로 산출된 누군가여야 한다. 그래야 상호 이해가 가능하다. 형이상학적인 것, 예를 들어 나의 '원형(元型, Archetype)'을 설명하려 들다간 설명도 제대로 할 수 없을뿐더러 그것을 어설프게나마 설명한다고 해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 마디로, '페르소나'는 나를 알아갈 수 있는 어느 여럿의 '단서'다.
'원형'이란 '자아'의 구심을 이루는 개념이지만, 이 원형 또한 페르소나에 영향을 받는다.
사람이란 '원형'만으론 살 수 없다.
각자의 역할을 해내며 살아야 한다. 원하지 않는 페르소나를 수 십 개, 수백 개 써야 하는 이유다. 이 안에서 '원형'은 희미해진다. '자아'를 잃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다. 직장인은 직급과 직책이라는 페르소나 안에서 숨 막혀하고, 육아를 하는 사람은 아이를 돌보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해 우울해진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어서 '나 자신'을 구해내야 한다. '원형'의 존재를 키우거나, 그것의 색을 짙게 만들어야 한다.
즉, '나'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래서 나는 지금 어떠한 상태인 건지를.
나를 알아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
삶이 내게 부여하는 '페르소나'라는 단서에 돋보기를 갖다 대보자.
메타인지 글쓰기의 시작,
'페르소나 글쓰기'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나는 다양한 책을 출판했다.
다양한 책을 출판했다는 건, 다양한 글을 써냈다는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돌아보니 그것은 '페르소나 글쓰기'로 가능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페르소나 글쓰기'란 무엇인가?
처음부터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출판한 책을 면면히 살피니, 그 안에는 내 페르소나들이 다양하게 분류되고 또 녹아 있었다.
나는 내 '페르소나'를 '나열'하고, 그것을 '세분화' 했던 것이다.
이것은 심리학을 공부한 덕분이라 생각한다. 나 자신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바로 '페르소나'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하니, 내 안에서 수많은 글감과 소재를 찾아낼 수 있었다. 더불어, '페르소나'뿐만 아니라, 내 '원형'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할 수가 있었고 겹겹이 쌓인 사회적 가면에 짓눌려 숨 막혀하는 내 자아에 풍부한 산소를 공급할 수 었었다.
최근엔 '페르소나 글쓰기 2.0'으로 업그레이드를 했다.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며 많은 분이 '페르소나 세분화'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스토리텔링'으로 풀면 효과가 더 커지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 생각은 적중했다.
'고래는 바닷물이 짠 줄 모른다'란 말이 있다.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페르소나 세분화'를 '스토리 텔링'으로 풀어가는 순간. 많은 분께서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보기 시작했고, 각각의 자신에게서 수많은 글감과 소재를 찾아내었다.
한 걸음 떨어져 나를 보고, 타인이 되어 내가 하는 일과 역할을 생각해보고.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신성하고도 짜릿한 과정.
마침내, 글쓰기를 통해 '메타인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나는 '페르소나 글쓰기'가 이토록 훌륭하고도 강력한 것임을 알지 못했다.
'메타인지 글쓰기'를 하고 나서야, 이것이 얼마나 많은 분의 글쓰기를 시작하게 했는지. 그러니까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만약, 메타인지를 하지 못했다면 나는 그저 당연한 것으로 그것을 치부하고 묻어 놓았을지 모른다.
더 나아가.
나는 '메타인지 글쓰기'를 통해 '본업'에서 '업'을 찾아낼 수 있었고, 직장인이라는 무거운 페르소나를 다른 한편으론 즐길 수 있는 기술도 습득하게 되었다. 나를 옥죄고 무겁기만 했던 사회적 역할과 책임들에서, 나는 '의미'와 '가치'를 찾아낼 수 있었고 그것들은 써 내려가니 콘텐츠가 되어 자고 있는 동안에도 '개인 브랜딩'과 '경제적 파이프라인'이 형성되고 있다.
글쓰기의 시작은 막막함 그 자체다.
시간과 실력도 문제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소재'다. 무엇을 써야 할까. 누구를 위해 써야 할까.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소재'는 어찌 보면 가장 먼저 해결해낼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페르소나 글쓰기'를 통해서 말이다. 답은 내 안에 있다. 내 이야기를 쓰면 된다. 그것을 더 특별한 소재로 만들기 위해선 나를 더 탐구하면 된다. 동시에, 스스로를 메타인지하여 나 자신을 낯설게 바라보면 된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잘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한 채 성공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스스로 경험하고 증명하고 있는 바다. '페르소나 글쓰기'를 통해 나를 탐구해가니,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들이 몰려오는 걸 직접 목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잘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나를 샅샅이 살펴보는 걸 추천한다. 나는 정말 잘 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러하고 싶다. 그래서 나를 살피는 글쓰기를 평생 멈추지 않으려 한다.
그 시작은 '메타인지 글쓰기'이고, '메타인지 글쓰기'의 시작은 다시 '페르소나 글쓰기'라는 걸 상기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