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 글쓰기는 카이사르처럼

객관적 글쓰기는 메타이지 글쓰기의 시작!

by 스테르담
카이사르가 전투 중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유


"카이사르의 글은 알몸과 같아서, 사람이 몸에 걸치는 장신구를 벗어던졌을 때 생겨나는 매력으로 가득하다."

- 키케로의 카이사르에 대한 글 감상평 -


카이사르와 동시대를 살았고, 서양 역사에서 최고의 웅변가로 기억되는 키케로는 카이사르의 글을 이와 같이 표현했다.

나폴레옹 또한 "갈리아 전쟁기는 전쟁 기술에 관한 최고의 교과서다."라고 말했다. 그의 글은 간결하고 분명하며, 사족 없이 바로 핵심으로 돌진하는 문장들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재밌는 것은, 카이사르의 책은 단순히 자신의 이야기를 후세에 전하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업적을 로마 시민들에게 알려 지지율을 높이고, 자신에 대한 정치적 인기를 모으려 한 것이었다. 카이사르는 겨울이 되어 더 이상 전투를 진행할 수 없을 때 그동안 써 놓았던 원고를 로마로 보내 이를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당시, 이미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였다.


당시 로마는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민회'에서 지도자와 고위 관료를 선거로 뽑는 공화정 국가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얻어야만, 전쟁이 끝난 후에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전쟁으로 자리를 비운 동안 측근을 고위 관료로 앉혀 놓을 수가 있었다. 특히, 자신의 가장 큰 경쟁자인 폼페이우스가 로마에 그대로 있는 상황에서 자신은 갈리아 총독 역할을 했어야 했기에, 그의 글과 책은 자신이 로마를 위해 어떤 성과를 이루었는지를 알리고 시민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던 중요한 수단이었다.


카이사르가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치열한 전투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이유다.


전투에서 '창'과 '칼'이 그의 무기였다면.

정치에서는 그의 '글'이 아주 강력한 무기였던 것이다.


객관적 글쓰기의 정석,
'카이사르 글쓰기'


'갈리아 전쟁기'를 보면, 서술을 정확히 하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스스로의 잘못도 솔직하게 기록했다. 적의 명분도 공정하게 풀어썼다. 카이사르는 정확하게 쓰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생각을 보다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는 최선의 수단임을 알고 있었다. 의도적인 거짓이 하나라도 있으면, 독자는 다른 서술도 모두 믿지 않을 것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던 그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나'라는 1인칭 단수를 사용하지 않았다. 자신이 쓴 글이지만, '카이사르'라는 3인칭으로 내내 자신을 기술했다. 서술에 객관성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그의 글과 책은 일반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그럼에도 논리적으로 서술을 전개하는 자신의 논법을 바꾸지 않았다. '주관적 선택'이었지만, 그 어느 글보다 '객관성'을 크게 확보함으로써 그의 품위와 필력을 빛나게 했다.


나는 그의 글쓰기에서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도출했다.


첫째, 전투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둘째, 글쓰기는 그의 강력한 무기였다.

셋째, 스스로를 3인칭으로 지칭할 정도로, 객관성을 추구했다.


그의 글쓰기는 '객관적 글쓰기'의 정석을 보여준다.

'객관성'은 '메타인지 글쓰기'의 주요 요소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볼 때,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보게 되고 모르던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편협함에서 벗어나 더 넓은 자아와 세상을 조망할 수 있다.


카이사르 글쓰기는 그래서 우리 실생활에 당장 적용이 될 수 있다.


첫째, 삶은 전투와 같다.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써야 한다.

둘째, 글쓰기는 그 어느 것보다 강력한 무기다. 창과 칼이 없는 세상에선 더 그렇다. 자신만의 글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셋째, '객관적 관점'은 '메타인지 글쓰기'의 시작점이다. 더불어, '메타인지'를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 '카이사르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카이사르 글쓰기'로


취업 준비생 후배들을 위해 멘토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인생 곡선'을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설명해달라고 했다. 단, '주어'를 '3인칭'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는!'이 아니라, '누구누구(자신의 이름)는'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처음엔 매우 낯설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말하며 깨우치는 게 많은 눈치였다. 실제로, 멘토링이 끝난 이후 자신이 가야 할 길과 진로에 대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3인칭으로 스스로를 객관화하며,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게 되었고, 스스로를 조망하여 보니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더 살려야 하는지를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글쓰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앞서 설명했던 '페르소나 글쓰기'를 기억할 것이다. 페르소나는 '주관적'으로 나열해야 한다. 그러나, 그 페르소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눈으로 내 것을 보고, 내 특수성과 전문성 그리고 내가 줄 수 있는 영향력을 발굴해야 한다.


내 페르소나를 세분화할 때.

'스토리 텔링'을 제삼자의 눈으로, 객관화하여 써 내려가는 것이 필요하다. 카이사르가 그러했던 것처럼, 주관성을 배제하고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부터 그것이 이루어내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써내는 것이다.




내 목소리를 녹음하여 들으면 그것은 매우 낯설다.

내 얼굴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 보는 그 모습도 친숙하지가 않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나는 내가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 내가 이런 단어를 쓰는구나. 이런 소리를 내는구나. 이런 습관이 몸에 배어 나오는구나. 나는 이런 표정을 지었는데, 실제로 보이는 표정은 이러하구나.


나를 잘 안다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이 착각이 불러오는 삶의 고단함은 생각보다 크다.


반대로, 완벽히 알 순 없지만 스스로를 객관화하여 조금씩 더 알아가는 과정을 멈추지 않는다면.

삶의 그 고단함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점점 더 잘 되고 있다는 생각과 느낌 그리고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스스로를 솔직하게 담아낸 알몸과 같은 글은 살아가는 데에 있어 생각보다 큰 용기를 가져다줄 것이고.


그것은 직접 시도하고 경험해보는 사람만이 알게 되는, '메타인지 글쓰기'의 선물이자 축복이다.




* 글쓰기의 본질을 전하는 사람들, 팀라이트가 브런치 글쓰기 강의와 공저출판 프로젝트를 런칭 했습니다. 많은 관심과 함께 주변의 글쓰기가 필요하신 분들께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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