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킨 기억의 격자 속에 우리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이 없으면 존재의 가치는 수그러든다. 아니, 아예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만큼 기억은 삶과 존재에 있어 필수의 생존 메커니즘이다.
생명체의 능력은 뇌의 구조에서 나온다.
두뇌의 역량에 따라 생존 방식과 그 확률이 달라진다. 뇌는 점진적으로 발전하여왔고 그 복잡성은 더해졌다. 오래된 구조 위에 새로운 구조가 첨가되는 방식이다. 경험이 경험을 낳고, 이것들이 학습되어 거대한 데이터를 형성하며 발전한 것이다.
중요한 건, 인류는 '기억'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예측'하게 된 것이다. 즉, 인간은 '미래'를 가지게 된 존재다. 이것은 어느 다른 동물과 다른 양상이며, 그리하여 만물의 영장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은 눈앞 당장의 이득이 있더라도 미래의 손해를 보게 될 미래를 걱정하여 만족을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이것을 우리는 이성적 판단이라고 하며, 이를 바탕으로 좋고 나쁨의 과거 또는 현재의 판단이 아닌 옳고 그름에 따른 미래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 기억
이것을 활용하면 꽤 재밌는 일이 생겨난다.
'기억'이라는 말을 '미래'에 갖다 붙이는 것이다. '기억'은 통상 '과거'에 국한된 개념이다. 그 사전적 의미를 봐도 그렇다.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내는 것'이 '기억'으로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전, 그러니까 과거'란 의미가 짙게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다시 '기억'이란 한자를 뜯어보면 꼭 그것이 과거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도출된다.
'기억(記憶)'이란 말은 '기록할 기'와 '생각할 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어디에서 '시제(時制)'의 의미는 없다. 그러니까, '기억'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묶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록한 것을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기억한다면.
'기억'의 원뜻은 훼손되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도 기억 연구는 과거 경험의 기억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실제적이고 일상적인 기억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여 '미래 기억'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다가올 성공의 문을 여는 생생산 이미지 능력'이란 주제로 집필된 '미래 기억'이란 책도 있다. 변화 심리학의 최고 권위자인 앤서니 라빈스의 목표 달성법을 근간으로 하는 이 책에서, 저자는 미래 기억은 '행동을 한 후 펼쳐질 미래의 자기 모습을 밑 머릿속에 그려 넣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더불어, 저자는 과거와 현재를 기억하는 사람보다 미래 기억에 집중하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그들은 쉽게 결과를 내는 능력을 가졌고, 자신의 감정을 제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졌다고 말한다.
나는 이것에 흔쾌히 동의한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측정하며 미래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내가 이루어 낸 것은, 글쓰기 이전의 그것과 천지차이인 것을 몸소 경험하고 있다.
쓰면 이루어진다. 써야 이루어진다.
우리 뇌는 거대한 정보처리 시스템이다.
인간의 뇌는 1,000억 개에 달하는 신경세포와 뉴런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장기 기억과 관련한 추상 세포(pyramidal cell)는 10억 개 정도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폴 레버(Paul Reber) 교수에 따르면 이 추상 세포 개당 정보를 1개밖에 기억할 수 없다면 우리 뇌는 곧바로 용량이 꽉 차서 신경 고갈 상황에 빠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폴 레버 교수는 뇌의 저장 능력에 대해 합리적인 계산에 근거하여, 그것의 데이터 용량은 '페타바이트'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것은 단순 비교일 뿐이며 결국 인간의 뇌는 무한한 데이터 용량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런 뇌가 하는 역할은 우리의 생존을 돕는 것이다.
지각하고 인지한 것을 해석하여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할지를 가늠하게 한다. 우리의 몸을 움직이게 하며, 위기 상황에선 없던 에너지와 힘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지금 당장 잠시 눈을 감고 색 하나를 떠올려 보자.
눈을 뜨면 무엇이 보이는가. 우리가 생각했던 색이 금방 검색되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뇌는, 우리가 입력한 값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생존해온 방식이다.
이것을 바꿔 말하면?
뇌에 어떤 값을 넣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값을 찾아내기 위해 뇌는 노력할 것이고, 그 노력에 의해 우리는 생각하고 행동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꿈이 없었다.
그러나, 대학생 때에 이르러 해외에 나가 역량을 펼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가정 형편상 단 몇 달의 어학연수도 가보지 못했다. 바람과 현실의 괴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어렵사리 들어온 지금의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업무는 해외랑 전혀 상관없는 국내 영업 마케팅 직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바랐던 '해외에서 역량을 펼치고 싶다는 욕구'는 현실에선 일어날 리 없는 망상과도 같았다.
그런데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
지금 나는 두 번째 해외 주재원 생활을 하고 있다. 한 번은 유럽에서. 그리고 지금은 중남미에서.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넘어본 적이 없는 내가, 어학연수 한 번 다녀오지 못하고 국내 시장에서 일을 시작한 내가. 이제는 전 세계를 누비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출장으로 가보지 않는 대륙과 나라가 없을 정도로!
그러다 대학생 때 써 놓은 'Wish Note'를 발견했다.
현실에 절박했던 나는, 아마도 무언가를 남겨 놓고 싶었나 보다. 바라는 것과 그러하지 못한 현실의 괴리감 속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것이 무언가를 써 놓는 것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써 놓은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많은 것들이 이미 이루어진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것, 되고 싶다고 바란 것, 내가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배우자까지.
심리학에서 말하는 '플라시보 효과 (자기 암시 효과)'를 능가하는 현실을 직접 경험하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당시엔 글쓰기를 할 때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마도 나는 '미래 기억'을 써 내려갔던 것 같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처절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과거의 나에게, 그래서 나는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쓰지 않았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물론, 지금의 나도 내가 바라는 것을 쓰고 있다. '미래 기억'을 선명하게 하기 위해.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그리하여 더욱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위해. '상상'을 '구체적'으로 변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도구는 바로 '글쓰기'라는 것. 그에 대한 내 확신과 신념은 변함이 없다.
나는 바라는 것이 많다.
아직도 꿈꾸고 싶은 것도 많다. 나이가 드니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미래 기억'을 그려 나간다. '글쓰기'를 통해서다. 글로 그리는 그림. 글로 기록하는 미래 기억. 이것은 나에게 삶의 희망이자, 오늘을 만끽하게 하는 에너지다.
쓰면 이루어진다.
써야 이루어진다.
나는 이것을 스스로에게 수 차례 읊는다.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쓰기 위해.
더불어, 내가 만들어 내는 미래 기억과 수많은 바람 속엔 나의 욕구와 나 자신이 있다.
그것을 마주하는 건 내게 있어 큰 즐거움이며, 알지 못했던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쾌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