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 글쓰기가 주는 선물

몰입, 세계관 그리고 콘텐츠

by 스테르담
나 자신을 알아가는 통쾌함


글쓰기는 메타인지의 과정 그 자체다.

그럴 만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내어 놓는 그 과정은, 스스로를 해부하지 않아도 되는 긍정적 자기 분열이기 때문이다. 내 글의 첫 독자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글을 씀과 동시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분리되고 분열된다. 분열된 존재는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그 둘은 대화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다.


이것은 메타인지의 기본 원리다.

이를 통해 알고 있던 걸 더 명확히 알게 되거나,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앎'과 '모름' 사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

'안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착각, '모른다고 규정했던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단 것에 대한 깨달음.


나 자신을 알아가는 통쾌함은 여기에서 온다.


통쾌함 뒤에 이어지는 선물


메타인지 글쓰기의 통쾌함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에게 더 많은 선물을 가져다준다.


그 선물은 '나'를 하루하루 더 잘 되게 하는 것들이다.

내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다. 아니,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니, 나를 점점 더 잘 되게 하고 있는 이 (돈도 들지 않는, 아니 오히려 돈이 되는) 활동을 멈출 이유가 있을까?


메타인지 글쓰기를 통해 수많은 선물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겠지만.

나 자신을 알아가는 통쾌함 뒤에 이어지는, 가장 인상적인 선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첫째, 몰입


삶은 내가 집중한 대상과 그러하지 않기로 한 대상의 결과물이다.

내가 집중한 대상은 아마도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반대로, 집중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만약, 집중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왔다면 그것은 우연이나 요행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어떠한 대상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집중엔 한계가 있으며, 자극적이거나 쉬운 무엇에 우리네 의식은 홀리기 때문이다.


몰입 이론의 창시자인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무언가에 흠뻑 빠져 있는 심리적 (무아지경) 상태'로 정의했다.

'몰입'의 전 단계는 '집중'이며, '몰입'은 다시 '과업에 대한 강렬한 주의 집중'의 상태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칙센트미하이는 "몰입 현상은 학습과 노력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글쓰기'가 이를 위한 노력으로 최상의 것이라 자부한다.

내 경험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나는 글을 쓸 때면 무아지경이 된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가는지 모르겠다. 하나의 글을 써내고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면, 내가 느낀 잠깐의 시간이 몇 시간으로 치환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아니다. 열렬히 집중한 그 시간이 나에겐 참으로 소중했고, 그 열기에 내가 가지고 있던 근심과 걱정이 태워져 날아가 버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로 우리는 나와 환경의 구분을, 시간의 흐름을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거나 잊어야 하는 때가 있다.

이를 바꿔 말하면, '철저한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 된다. 홀로 있어야, 우리는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내 삶은 더 선명해지고 나에겐 더 잘 될 일들만이 일어난다.


이것은 분명한 몰입의 긍정적 효과다.

그리고 이 몰입은 글쓰기가 가져다주는 소중한 선물이기도 하다.


둘째, 세계관


우리는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다.

'세계'는 지구상의 여러 나라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대상이나 현상의 모든 범위를 말한다고 한다면 그 범주는 끝이 없다. 태양계 또한 하나의 세계라 할 수 있고, 이보다 더 큰 은하와 그 이상의 우주 또한 우리는 '세계'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보다 더 큰 세계는 우리네 마음속에 있다.

'나를 뺀 우주'와 '나'의 무게는 어떤 것이 더 무거울까? 나는 후자가 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다. 더불어 내 존재라는 우주는 아무리 유영하고 탐구해도 다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니, 나라는 우주와 그 세계는 그 어느 크기로도 가늠할 수가 없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의 우주이고 세계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저마다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 나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고 또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이는 상상의 영역이지만, 구체적인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상상을 현실로 만들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한다. '구체적인 세계관'은 내 소원을 이루어다 줄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인 세계관'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글쓰기'다. '글'은 실체가 없는 생각과 감정을 '구체성'으로 변환해주는 아주 강력한 도구다.


이에 대한 또 하나의 신비한 경험이 있는데, 그것은 내 글들이 살아 움직여 '세계관'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출간하려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토해 내듯 내어 놓은 많은 양의 글들이 모여, 유기적으로 작용하였고 나에게 '작가'라는 세계관을 형성해줬다. 그 세계관은 멈추지 않는 소재를 생산하게 해 주었고, 나는 이러한 생각과 실천을 하는 사람이라는 페르소나와 자격을 부여해줬다.


그 세계 안에서,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며 좋은 사람들과 선하고 강한 영향력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상상한 것들이다.

나의 세계에서, 내 우주에서 언젠가 이루고 싶은 소망이었지만 글쓰기를 통한 구체적 갈망은 이내 현실이 된 것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하여 내가 바라는, '나'라는 사람은 누구이며 어떠한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인가.


세계관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사이엔 우주만큼의 차이가 있다.


셋째, 콘텐츠


몰입하여 만들어진 세계관은 콘텐츠를 양산한다.

콘텐츠의 양산은 '생산'의 다른 이름이다.


삶과 시간 그리고 돈을 '소비'만 하며 살아왔던 존재에게, 이것은 크나큰 '혁명'이자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나는 '글쓰기'를 고귀한 '생산 활동'으로 규정한다. 소비만 일삼아왔던 내가 삶의 방향을 180도 바꿀 수 있던 계기가 되었다.


콘텐츠는 내 자산이다.

자산은 내 노력, 그러니까 '시간'과 '정성'의 산물이다. 글쓰기에 들인 '시간'과 '노력'은 이처럼 가치 있는 생산물로 재탄생하게 된다. 콘텐츠가 내포한 '가치'와 '의미'는 돈으로 환산된다. 생산을 했으니, 이것은 어디에선가 소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메커니즘이다.


나의 콘텐츠는 내가 자고 있을 때에도 수익을 안겨다 준다.

월급 이상, 연봉 이상의 수익은 삶을 윤택하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의 기회와 범주를 확장시켜 준다. 동시에, 내 콘텐츠의 가치를 가늠할 수도 있다. 더 큰돈은, 더 큰 가치를 의미하므로 더 큰 가치를 지향하면 더 큰돈이 들어오게 된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쉽지 않으니 더 큰 의미와 보람이 된다. 더 깊이 사색하고, 더 큰 통찰을 얻어야 다른 사람에게 가치를 전달할 수 있으므로. 그것으로부터 얻는 내 성장의 크기는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을 정도다.


즉, 콘텐츠는 내 성장과 연계되어 있다.

그것은 성장의 시작이자, 성장을 지속하게 해주는 에너지다.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면.

또 다른 경제적 파이프 라인을 구축하고 싶다면.


글쓰기를 시작해야 한다.

당장 그것이 돈이 될 거란 욕심과 조급함을 내려놓고 나면, 우리는 꾸준히 글을 쓸 수 있게 되고.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그것은 내가 바라는 기대 이상의 것들을 가져다준다.




글쓰기의 선물은 이것에 머물지 않는다.

무궁무진하므로, 나는 그것을 모두 열거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몇 가지만을 떠올리더라도.

글쓰기의 가치는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인공적인 가치와 돈을 추구하기 위해 쓰는 글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글은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며, 내 평범함으로부터 비범함을 찾아내는 그 과정이 진정한 '생산 활동'이라는 것을 늘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몰입하고 있는가.

나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가.

내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있는가.


이에 대한 질문에, 하나라도 대답하지 못했다면.

기나긴 방황을 끝내고, 이제는 글을 쓸 때다.


그 이후에 맞이할 선물들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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