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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07. 2023

글쓰기는 '자발적 고독'이다.

'타의적 고독'의 '두려움'은 '자의적 고독'인 '글쓰기'로 치유한다.

글쓰기는 고독함의 다른 이름이다.

고독함은 혼자의 외로움을 말한다. 대개 외로움은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그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군중 속의 고독은 자의적일 수도 타의적일 수도 있는데, 타의적이라면 그것은 두려움이고 자의적이라면 오히려 자유에 가깝다.


이러한 측면에서 '글쓰기'는 '자발적 고독'이다.

그러니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다. 스스로를 조망하고자 하는 자유로운 의지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만큼이나 가치 있는 건 세상에 없다. 다만, 안타깝게도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가장 등한시되는 것 중 하나다.


때론 타의적 고독을 느껴야 한다.

두려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삶은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때 글쓰기란 자극을 전달한다. 마음이 편하고, 두려운 게 없으면. 의기양양한 존재는 제 멋대로 살아가고, 저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 순간 저 자신의 중심은 썩어 들어가지만, 자만심은 그것을 돌아볼 겨를을 주지 않는다. 속이 다 썩어 몸과 영혼에 문제가 생긴 뒤에야,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늦은 그때를 다만 만회할 수 있는 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많이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 있어, 글쓰기만큼 좋은 수단은 없다.

'타의적 고독'의 '두려움'은 '자의적 고독'인 '글쓰기'로 치유해야 한다.


글쓰기는 홀로여야 한다.

함께 쓰는 문우나 무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내 글을 대신 써주는 건 아니니까.


또한 글의 소재는 내 안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글쓰기의 목적은 필력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것을 꺼내어 그것을 마주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간혹, 정리가 안되어 쓰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을 만난다.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정리는 어질러져야 가능한 것이다'라고. 어지럽게 쓰고, 어지럽게 토해내고, 어지럽게 써서 나열하면. 자연스레 내 글쓰기의 지향점과 방향성이 '정리'된다.


'고독을 씹는다'란 말이 있다.

'씹는다'라는 건 사색한다는 말이다. 곱씹는다는 말과 그 궤를 같이한다. 씹으면 씹을수록, 새로운 맛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고독을 쓴다'라고 말한다.

'쓰는 것'은 '사색'이 함께 여야 가능한 말이기 때문이다. 고독을 씹는 것처럼, 그것을 씀으로써 알지 못했던 맛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하므로, 각자의 글은 자발적 또는 타의적 고독의 산물이다.

그 고독함을 미루어 짐작하면 내 안의 고독함 또한 가늠할 수 있다.


자발적 고독의 날들이 많아지길.

타의적 고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나는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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