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Jan 02. 2023

지금 쓰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죄목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죄, '자아유기'

이 묵직한 제목을 두고서 나는 내내 고민했다.

이것은 '쓰고 있는' 자의 여유일까. 오만일까. 아니면 강압일까. 나는 하고 있고, 당신들은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유죄를 선고할 자격이 내게는 있는가. 온갖 질문이 떠오르며, 이러한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되는 게 마치 죄를 짓는 건 아닌가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분명히 하겠다.

'선고하는 주체'에 대해서다. 나는 쓰지 않는 사람들을 단죄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못한다. 각 개인들을 단죄할 수 있는 건, 그러니까 유죄와 무죄를 가늠하여 통보하는 건 저 자신들이다. 고로, 내가 단죄하는 건 지난날 쓰지 않았던 나 자신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수많은 유죄를 선고해 왔다.

게으름이란 죄목으로. 남들보다 열등하다는 죄목으로. 그럼에도 노력하지 않는다는 타박과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지 못하고 있다는 압박을 계속해서 쏟아내었다. 나는 이러한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방법을 몰랐다. 무얼 해도 그 죄목을 넘어설 수 없었다. 무기력이 찾아왔다. 어차피 해도 안 되는 것들. 죄목이 씌워지면 나는 그러려니 그것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마음을 옥죄는 수갑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나에겐 이러한 죄목이 하나 둘 더 늘어나는가? 복리와도 같이 붙여지는 죄목들에 나는 침묵할 수 없었다.


글을 쓰고 나서야 알았다.

내 죄목은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죄'였다는 걸.


아차 싶었다.

뭔가 분주한 삶이었다. 피 튀기는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 열심히 달리고 또 열심히 싸웠다. 그런데, '나'는 없었다. 무엇을 위해 뛰고 싸웠는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피 묻은 손을 어벙벙하게 바라보고 있는 치매환자처럼, 나 스스로는 그토록 참담했다.


그제야 내게 붙여진 죄목들을 수긍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돌보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잊은 채, 가장 소중한 사랑의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나는 쓰지 않는 자들을 유죄로 가늠할 의도가 없다.

다만,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지를 묻고 싶을 뿐이다.


그 안엔 무엇이 들어 있는지.

열심히 살아온 지금에 당신들의 존재는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아닌지.

오늘도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몰라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 건 아닌지를 말이다.


유죄에서 벗어나려면 내 죄목 하나하나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인지하고 인정할 때, 반성문과 같은 글들은 터져 나올 수 있다.


터져 나온 글에 묻어 있는 자아를 마주하다 보면, 유죄의 꼬리표는 내가 붙인 것임을.

그것을 떼어버릴 수 있는 권능과 힘 또한 나에게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나에게 유죄를 선고했듯.

나는 나의 죄를 사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삶에도 문장 부호가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